법무법인 현 김래현 파트너변호사 / 한국도시정비협회 고문변호사

법무법인 현 김래현 파트너변호사 한국도시정비협회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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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소재

가. 전국의 수많은 정비사업조합의 조합장들을 전과자로 양산하는 현실이 수년 간 계속되고 있다면 이것은 준법의식 없는 조합장들의 문제인가? 아니면 잘못된 법 때문인가?

나. 재개발‧재건축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야 죄다 도둑놈 같은 조합장들의 결여된 준법 의식이 일으킨 문제이고, 따라서 더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비사업 관련 자문과 송무를 10여년 해온 본 변호사의 입장에서 그보다는 법 자체가 잘못 제정 운용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위와 같이 잘못 제정 운용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상 정보공개청구 제도에 대해서 일선 경찰 및 검찰 단계의 수사기관, 그리고 최종적인 법률해석 기관인 법원의 고무줄식 적용에 더 큰 폐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 가장 큰 문제는 도시정비법 상 정보공개 제도가 그 의무 위반 시 형사처벌의 근거로 작용함에도 법에서 공개 대상 자료를 명시하면서 추가로 ‘~ 및 그 관련자료’라는 포괄적이고 애매한 규정을 삽입함으로써 사실상 정보 공개 대상 자료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아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해석되고,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형사처벌 법규 해석의 최우선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명확성 원칙에 대해서 살펴보고 실제 사례를 들어서 그 문제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 형벌 법규의 명확성 원칙

죄형법정주의의 근본정신에 따라 일반국민에게 행위의 가벌성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줌으로써 그의 행동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함과 아울러 그 법규를 운용하는 국가기관의 자의와 전단을 방지하기 위해 형벌법규가 규정하는 범죄구성요건이 애매, 불명확해서는 아니되며 구성요건에서 금지 또는 명령되는 행위의 내용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법규는 그 문언의 표현력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성질상 다소의 추상성을 가지며 일의적이 아니라 보편 타당적으로 기술되고 어느 정도의 유형화, 추상화 내지 포괄적인 표현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그 명확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항상 절대적인 기준을 요구 할 수는 없고 통상의 판단능력을 가진 일반인이 그 구성요건에서 금지 또는 명령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 의결 정족수 미달로 무산된 대의원회의 서면결의서와 참석자 명부가 공개 대상인지 여부

가. 일부 조합원이 조합장을 상대로 대의원회의 서면결의서와 그 참석자 명부에 대해서 정보공개 요청을 했다. 이에 대해 조합장은 위 대의원회가 결과적으로 의결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음을 이유로 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비공개를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대법원은 “도시정비법에서 제시한 조합원 공개 대상 자료에는 ‘유효한 의결’이 이뤄진 이사회 대의원회 의사록만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다”며 “무효가 된 대의원회 관련 자료도 공개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나. 나아가 피고인 조합 임원은 위 대의원회 관련 자료가 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 외에 “무효가 된 회의 서류를 공개할 경우 일부 이해관계인들이 향후 대의원회가 개최될 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비공개 행위는 형법 상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주택정비사업을 시행하는 경우 조합 임원은 막대한 사업 자금을 운영하는 등 각종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건설사와 유착으로 인한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크고, 이는 공사비 증액, 불평등한 계약 체결 등과 같이 조합 및 조합원의 피해로 직결된다”며 “정비사업 시행과 관련된 자료를 조합원이 적시에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를 불응하는 조합 임원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위 정당방위 주장도 배척했다.

다. 위 판례에 대해서는 일반 조합 임원 입장에서 봤을 때 무산된 총회 관련 자료가 공개 대상 자료라고 인식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인데, 본 변호사 입장에서도 대법원 판시 내용을 봐서 ‘그렇게 판단됐구나’ 생각하게 되고, 향후 위 대법원 판결 취지에 의거 자문 의견을 줄 뿐 위와 같은 판례가 나오기 전 동일한 질의가 있었다면 그 답변에 대해서 법률전문가의 입장에서도 매우 고심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 조합임원은 현장 교부 외에도 우편 팩스의 방법을 이용해 조합원의 열람 복사 요청에 응해야 하는지 여부

가. 구 도시정비법 제81조 제6항은 조합 임원으로 하여금 “열람 복사 요청이 있는 경우 그 요청에 따라야 하고, 복사에 필요한 비용을 청구인이 부담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열람 복사 요청에 응해야 하는지에 관해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구 도시정비법 제81조 제2항, 동법 시행령 제70조 제2항 제5호에서 조합 임원은 조합원에게 열람 복사 방법을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규정해 개별 조합에 열람 복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개별 조합에서 열람 복사의 방법을 특정하지 않았다면 현장 교부 외에도 통상의 방법인 우편, 팩스 또는 정보통신망 중 어느 하나의 방법을 이용해 열람 복사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나. 위 판례에 관해 보건대, 최근 조합원들은 조합을 상대로 조합원 명부 등 자료를 요청하면서 출력본이 아닌 워드 파일 자체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워드 파일로 수령 시 그 정보의 가공이 매우 편리하며 제3자에게 위 자료를 공유하는 절차에 있어서도 매우 간소하고, 본인 입장에서는 별도의 등사 비용 등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워드 파일 형식의 정보 공개 방식에 대해서는 정보의 무분별한 가공, 무분별한 배포 등 개인정보 보호 등과 관련해 치명적 약점을 노출하고 있음에도 사전에 조합이 그 방식을 제한하거나 특정하지 않았다면 조합원의 이러한 정보공개 청구 요구에도 조합은 응해야 하고, 불응 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 아래에서 논의하듯 현재 정보공개청구 제도는 조합원의 알권리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수많은 개인정보 보호법 상의 문제점들에 애써 눈감고 있는 형국이다.

 

◇ 사용목적을 미기재해도 열람 등사를 허용해야 하는 경우

가. 법원은 도시정비법 상 정보공개 청구 제도의 사용목적 기재와 관련해 “사용목적을 제한적으로 예시한 규정은 없고, 나아가 도시정비법 상 관련 자료 공개에 관한 규정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위 시행규칙에서 규정한 ‘사용 목적’은 조합원의 알 권리에 준해 폭넓게 인정돼야 할 것으로 보이는 바, 조합 임원 등이 사용목적 미기재를 이유로 반드시 위 열람 등사 신청을 거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사용목적에 대한 사전 공감이 있는 경우 사용목적을 기재하지 않았더라도 얼마든지 열람 등사를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보태어 보면, 피고인은 당초 사용목적 미기재를 이유로 열람 등사 신청을 거부할 것이 아니므로, 도시정비법 위반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나. 이쯤되면 정보 공개 청구 시 사용목적 기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바로 열람 등사 신청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사용목적에 대한 사전 공감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서 전체적인 분위기와 정황에 비춰 볼 때 조합 임원이 기재되지 않은 사용목적까지 심미안으로 헤아려서 공개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실무에서도 어떤 조합원이든 한번만 사용목적을 기재하면 동일인에 의해 추후 이어지는 정보 공개 청구에서는 별도의 사용목적 기재가 없어도 된다는 취지로까지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문서나 전자우편을 통한 사용목적 기재 시에만 정보공개청구가 유효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현행 도시정비법 상 문구를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 확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 결어 - 한 없이 가벼운 개인정보 보호 취지

가. 조합원 명부 등에는 조합원의 휴대폰 번호, 실거주지 등 매우 민감한 개인 정보 등이 포함돼 있고, 이에 대해서 조합원이 조합에 개인 정보를 제공한 것은 명백하다.

나. 하지만 조합원은 위와 같은 개인 정보 등이 조합의 사업 시행 목적에 부합하게 관리 운영될 것을 요구하는 것인데, 조합원 명부 공개 요청 시 조합은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해 위와 같은 개인 정보가 포함된 조합원 명부를 사실상 전면 공개를 할 수 밖에 없다.

다. 위 명부 유출 시 애초 공개 목적과 범위대로만 사용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무적으로는 명부 유출 시 해당 명부는 구역 내외를 불문하고 돌아다니면서 사실상 정보 취득자의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용도가 매우 난무하고, 일반 조합원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사람으로부터 문자, 전화 발신, 우편물 발신 등 개인의 사생활에 원치 않는 침해를 입게 된다.

라. 이와 같은 점을 우려한 조합 측의 유권해석 등에 대해 사법부와 행정부는 일관되게 “개인정보보호법에 반하지 않으니 계속해서 조합원 명부를 제한 없이 공개하라”는 소리만 하고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한 온갖 민원과 비판, 비난은 조합이 오롯이 받고 있다.

마. 개인 정보와 관련해 전체적인 법체계에서 가장 하대받고 있는 영역은 도시정비법 상 정보공개청구제도라고 할 것인데, 이제라도 조합원의 알 권리 못지않게 개인정보 보호 취지를 대접해서 개별 조합원의 소중한 개인 정보가 사용 목적과 범위 기간 등을 넘어서서 무제한적으로 공유되고 남용되는 것에 대해 조합측 고소 고발이 있을 시 엄중한 무게감으로 수사 및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는 조합원 명부 등의 공개 시 별도의 제한이 없는데, 개인정보보호법 상 관련 규정을 준용하거나 내용을 차용해 도시정비법에도 정보공개청구권자가 입수한 개인 정보를 남용 및 오용할 시 그에 대한 강력한 형사처벌 규정을 포함시킴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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