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시정비협회 하재광 사무국장

정부의 3기 신도시계획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당장 일산, 파주, 인천, 남양주 등 3기 신도시 계획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1․2기 신도시 주민들은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각오로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다.

주민들의 반대를 놓고 “3기 신도시로 인한 집값 하락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매도할 수는 없다. 1기 신도시로 건립된 일산신도시는 한때 ‘천당 밑의 분당’과 함께 ‘천하제일 일산’으로 각광을 받았었다. 하지만, 강남과의 접근성이 좋은 분당이 신분당선 개통 등 광역교통망이 속속 연결되면서 더욱 살기 좋아진 반면, 일산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2자유로 하나 연결된 것이 고작이었다. 1기 신도시의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한 지금, 서울에 보다 근접한 지역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사실상 일산신도시에 대한 사망선고다.

1기뿐만 아니라 2기 신도시 주민들까지 반발하고 나선 것 역시 이유가 있다. 정부가 벌여놓은 2기 신도시도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하며 아직까지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이를 개선하지는 않고 덜컥 3기 신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 게다가 3기 신도시는 2기 신도시보다 서울에 가깝다. 검단신도시의 경우 2006년 말 2기 신도시로 지정되어 2009년 분양, 2011년 준공을 목표로 했지만 공염불에 그치다가 11년이 지난 2017년에야 비로소 첫 삽을 떴었다. 하지만 지난해말 인천 계양이 3기 신도시로 지정되면서 분양을 시작한 검단신도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더니 이번에 발표된 부천 대장신도시로 역시 사망선고를 받았다.

이번 제3기 신도시 조성계획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의 참담한 실패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집권 후 줄곧 부동산과 한판승부를 펼치고 있지만 사실상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다. 금융과 조세 등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쏟아 부으며 강력한 규제를 벌인 결과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이는 소비자인 실수요자나 투자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며 발생한 거래절벽 현상에 따른 것이지 정부가 애써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실질적인 주택가격 하향 안정세는 아니다.

정부가 서둘러 제3기 신도시 추가 지정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도 집값이 다시 반등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이 결국 무리수를 감행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도면유출 파동에서도 알 수 있듯 졸속으로 진행되다보니 당장 국민들의 반발을 불러오는 악수(惡手)가 됐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졸속이라는 것은 그동안의 ‘대책’만 보더라도 자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7년 수요억제에 초점을 맞춘 6.19대책(대출규제, 조정대상지역 확대, 전매제한 강화 등)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서울 집값 급등 원인은 공급부족 때문이 아니라 다주택 보유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 상승이 계속되자 한 달 만인 7월 25일 “수급 안정을 위해 적정 수준의 주택공급을 유도하겠다”고 밝혔고, 급기야 1년 뒤에는 9.13대책을 통해 수도권에 3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다. 이어 그해 9월 21일과 지난해 12월 19일, 그리고 이번까지 세 차례에 걸쳐 3기 신도시 조성계획을 속속 발표한다.

교통, 업무, 교육 및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2기 신도시 중 가장 성공작으로 꼽히는 판교신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부터 추진돼 개발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만 6년이 걸렸다. 최소 10년은 걸려야할 신도시 계획을 몇 달 만에 뚝딱뚝딱 만들어내니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능력이 대단하다고 감탄해야 할까, 그저 졸속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해야 할까는 명명백백하다.

이번 제3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계획은 전면 재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니, 신도시 조성으로는 서울의 집값을 잡기는커녕 서울과 수도권 집중현상만 초래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옳다. 현 정부의 치적으로 삼기위해 무리수를 남발하는 것은 시장혼란만 부추기고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키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수도권 신도시 조성은 국토의 균형개발과 맞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의 외연이 확장돼 서울․수도권 집중현상을 가속화할 뿐이다. 수도권에 조성되는 신도시는 서울 인구를 흡입하지 못한다. 오히려 지방에서 서울․수도권으로 일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메꾸면서 지방 공동화를 초래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 수도권에 아무리 신도시를 조성해도 서울집값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늘어나는 주택만큼 수도권 집중현상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3기 신도시를 비롯한 신도시들은 모두 수도권정비계획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수도권’에 지어진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 정비에 관한 정합적인 계획의 수립과 시행을 위해 1982년 제정됐는데, 서울과 인천, 경기가 수도권에 속한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수도권의 인구와 산업을 적정하게 배치하기 위해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과밀억제권역은 ‘인구와 산업이 지나치게 집중되었거나 집중될 우려가 있어 이전하거나 정비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고, 성장관리권역은 ‘과밀억제권역으로부터 이전하는 인구와 산업을 계획적으로 유치하고 산업의 입지와 도시의 개발을 적정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며, 자연보전권역은 ‘한강 수계의 수질과 녹지 등 자연환경을 보전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신도시는 이미 인구가 밀집돼 문제를 노정하고 있는 과밀억제권역이나 자연환경이 보전돼야 할 그린벨트지역을 해제하면서까지 조성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의 정비사업은 불가능하거나 초과이익환수 등 온갖 규제를 감내하느라 주거환경개선도, 신규주택공급도 못하고 있다.

풀리지 않는 의문 또 하나.

3기 신도시 개발을 추진 중인 정부는 수용될 토지 주인과의 갈등을 최소화한다면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헐값 수용’ 시비를 불렀던 과거의 방식을 지양하겠다는 것. LH는 3기 신도시 공공택지 조성 개발의 이익을 ‘원주민’과 공유할 ‘리츠 투자’도 적극 활용한다고 한다. 수용 당하는 토지주인 ‘원주민’을 살뜰하게 챙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는 정비사업에 있어서는 ‘소유주’보다는 ‘세입자’를 원주민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수십년간 집 한 채 보유하고 있던 소유주는 투기세력으로 치부하더니 막대한 보상이 예상되는 신도시 해당지역 토지주는 보호해야 할 원주민이라고?

이미 1․2기 신도시에 대해 성공보다 실패라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이 상당수다. 여기에 대한 보완을 고민하지 않은 채 3기 신도시를 밀어붙이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신도시계획은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시급하게 풀어야 할 것은 정비사업에 대한 가혹한 규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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