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 최대의 명절, ‘설’이 어느새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설이 언제부터 우리의 명절이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중국의 역사서 『수서(隋書)』와 『구당서(舊唐書)』에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의 명절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고려사(高麗史)』에는 설이 상원(上元)ㆍ상사(上巳)ㆍ한식(寒食)ㆍ단오(端午)ㆍ추석(秋夕)ㆍ중구(重九)ㆍ팔관(八關)ㆍ동지(冬至) 등과 함께 9대 속절(俗節)의 하나로 기록돼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한식ㆍ단오ㆍ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다.

현재는 누구나 설날을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설날은 근대에 들어 많은 고충을 겪어 왔다.

지난 1896년 1월 1일(음력 1895년 11월 17일)에 우리나라에 태양력이 수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여전히 이어져 내려왔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부터 수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하나로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마저 억압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들의 명절인 천장절(天長節)ㆍ명치절(明治節) 등을 국경일로 정해 갖가지 행사에 우리 국민들을 참가시켰다. 또한 광복 후 우리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설에 대해 이중과세라는 낭비성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가가 아무리 신정을 강요해도 일반인들에게 명절은 지금의 설날이었다. 이후 설날은 한때 ‘민속의 날’이라는 지극히 생소한 이름이 붙여졌다가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찾게 됐다.

 

∥새해를 맞는 음식, 떡국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설날에는 반드시 떡국을 만들어 먹었다. 보통 설날 조상님 제사상에 밥을 대신해 떡국을 올려 차례를 모시고, 그것으로 밥을 대신해서 먹었다. 물론, 양력 새해 첫날에도 대부분 떡국을 먹긴 하지만, 설날에 먹는 떡국이야 말로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하는 음식으로 우리에게 널리 인식된 진짜(?) 떡국이다.

조선 후기 홍석모(洪錫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하고 설명한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떡국을 가리켜 ‘백탕(白湯)’ 혹은 ‘병탕(餠湯)’이라 적고 있다. 겉모양이 희다고 해서 ‘백탕’이라 했고,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고 해서 ‘병탕’이라고도 했다. 또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물어보는 데서 유래해 ‘첨세병(添歲餠)’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 한 가지. 우리는 언제부터 떡국을 먹으며 새해 첫날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떡국의 유래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문헌이 남아있지 않은 탓에 떡국의 유래가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저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왔을 것이다’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에 대해 1946년 최남선(崔南善)이 조선에 관한 상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문답 형식으로 쓴 책인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상고시대의 신년 제사 때 먹던 음복(飮福)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적혀 있으며,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정조차례(正朝茶禮)와 세찬(歲饌)에 없으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계로 뽑아낸 가래떡을 사먹곤 하지만, 떡을 뽑는 기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마당에 안반을 두고 남자들이 떡메로 떡을 쳐서 가래떡을 만들었다. 멥쌀을 쪄서 이것을 세게 쳐 ‘친떡’으로 만들고, 이를 손으로 길쭉하게 늘려서 가래떡을 만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올라오는 뜨거운 떡을 연신 찬물에 손을 담가가며 손으로 쭉쭉 늘어내 모양을 잡았으며, 식어서 굳으면 칼로 어슷하게 썰어 떡국에 들어갈 떡을 만들었었다.

본래 떡국의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로는 꿩고기가 으뜸이었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 원나라의 풍속에서 배워온 매사냥이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놀이로 자리를 잡으면서 매가 물어온 꿩으로 국물을 만든 떡국이나 만둣국, 그리고 꿩고기를 속으로 넣은 만두가 고급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하게 매사냥을 하지 않으면 꿩고기를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일반인들은 닭고기로 떡국의 국물을 내기도 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다.

 

∥나이 먹는 법, 지역마다 다르다

‘흰 가래떡을 썰어서 맑은 장국에 넣고 끓인 음식.’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이 밝히고 있는 떡국의 정의다. 하지만 여타의 음식과 마찬가지로 떡국 역시 지역색이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지역마다 ‘나이를 먹는 법’도 다르다.

보통 가래떡으로 떡국을 만들어 먹는 것에 비해 개성에서는 가래떡보다 얇게 떡을 만들어 대나무를 이용해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든 ‘조랭이떡국’을 먹는다. 조랭이떡은 떡국의 재료가 되는 떡을 가리키는데, 가운데가 잘록한 모양이 마치 조롱박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랭이떡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목을 조르는 형상을 떡이 지니고 있다 해서 생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홍선표(洪善杓)는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서 “가래떡을 어슷어슷 길게 써는 것은 전국적이지만 개성만은 조선 개국 초에 고려의 신심(臣心)으로 조선을 비틀어버리고 싶다는 뜻에서 떡을 비벼서 끝을 틀어 경단 모양으로 잘라내 생떡국처럼 끓여 먹는다”고 전한다.

또한 충청도에서는 ‘생떡국’이라 하여 익반죽한 쌀가루를 도토리 크기로 둥글게 빚어서 떡국을 만들었다고 하고, 경상북도에서는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지 않고 태양처럼 동그랗게 썰어서 장국에 끓여낸 ‘태양떡국’을, 경상남도에서는 찹쌀과 멥쌀을 섞어 반죽해 가마솥에 구운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꼬들꼬들하게 말려서 끊는 국물에 넣고 끓이는 ‘굽은떡국’을 먹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강원도와 전라북도, 전라남도는 각각 만두떡국과 두부떡국, 꿩떡국 등이 이색적인 지역 떡국으로 전해진다.

※참고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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