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지박살 → 풍비박산, 절대절명 → 절체절명, 산수갑산 → 삼수갑산

홀홀단신 → 혈혈단신, 야밤도주 → 야반도주, 복걸복 → 복불복

 

우리가 일상에서 천연덕스럽게 쓰고 있는 말 가운데 의외로 틀리게 쓰고 있는 말이 적지 않다. 특히 우리말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는 일반인은 물론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기자들 중에서도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신문의 기사 중 “외환위기로 집안 풍지박산”, “한·EU FTA 처리 문제로 풍지박산”, “어렸을 때 집안이 풍지박살이 나는 바람에 가족이 뿔뿔이 헤어졌다” 등의 표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때의 ‘풍지박살’ 또는 ‘풍지박산’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바른 표현이다. ‘풍비박산’은 ‘우박(雹)이 바람(風)에 날려(飛) 흩어짐(散)’이라는 한자 그대로 ‘사방으로 날아 흩어짐’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깨어져 산산이 부서짐’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 ‘박살’과 버무려 ‘풍지박살’이라고 하거나, 그나마 바르게 사용하겠다고 신경을 쓴다는 게 ‘풍지박산’이니 정말 우리말이 풍비박산날 노릇이다.

이렇게 흔하게 잘못 쓰는 한자어 몇 가지만 더 알아보자. “풍전등화와 같은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졌다”는 말도 자주 쓴다. 그러나 이때의 ‘절대절명’ 역시 ‘절체절명(絶體絶命 : 궁지에 몰려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을 잘못 쓴 것이다.

한정식 등을 파는 음식점 중에 ‘산수갑산’이라는 상호를 쓰는 곳들도 왕왕 눈에 띄고, 또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목소리 높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삼수갑산(三水甲山)’을 잘못 쓴 것이다. ‘삼수(三水)’를 ‘산수(山水)’라고 잘못 알고 그저 ‘수려한 산하’라는 뜻이겠거니 하고 쓴 것일 테지만, ‘삼수’와 ‘갑산’은 함경도에 있는 지명이다. ‘삼수’와 ‘갑산’은 산골 오지여서 춥고 살기가 팍팍한 곳이라 예전에는 중죄인의 귀양지로 사용됐다고 한다.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힘든 곳이니 ‘몹시 어려운 지경’이나 ‘최악의 상황’에 대한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며,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하겠다”는 말은 최악의 상황을 강조하여 결연한 의지를 밝힐 때 쓰인다.

‘홀홀단신’도 자주 잘못 쓰는 말이다. 아마도 ‘홀몸’이나 ‘홀아비’ 등의 우리말 때문에 혼동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혈혈단신(孑孑單身)’이 맞는 표현이다. ‘혈(孑)’은 외롭다는 뜻이니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홀몸’이라고 할 때 쓰는 말이 ‘혈혈단신’이다.

‘야밤도주’ 역시 엉터리로 버무려진 말로 ‘야반도주(夜半逃走)’가 정확한 표현이다. ‘남의 눈을 피하여 한밤중에 도망함’을 뜻하는 말이다 보니 ‘깊은 밤’이라는 뜻의 ‘야밤’이 앞에 붙었겠지 하고 “야밤도주했다”고 쓰는 모양이다.

‘복불복(福不福)’ 또한 TV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게임소재로 자주 쓰여 이젠 제법 알만도 한데 여전히 ‘복골복’이나 ‘복걸복’이라고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바르게 쓰지 못할 바에야 아예 쓰지 않는 게 더 낫다. 말글살이는 곧 그 사람에 대한 신뢰에 밀접하게 작용한다. 모든 큰일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뜻만 통하면 되지 않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틀린 말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뜻도 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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