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진도시정비연구소 서영진 대표 / 前 서울시의회 의원

법무법인(유한) 현 김경태 파트너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현 김경태 파트너 변호사

조금 지난 자료이기는 하지만, 서울시가 2015년에 밝힌 재건축‧재개발사업 소요기간 분석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진행되는 재건축‧재개발사업의 정비구역 지정부터 준공까지 소요기간은 평균 8.7년이다. 2000년 이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서울의 545개 현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이다.

사업 단계별로는 정비구역 지정부터 조합설립인가까지 평균 1년, 조합설립인가부터 사업시행인가까지 평균 2.2년, 사업시행인가부터 관리처분계획인가까지 평균 1.5년, 관리처분인가부터 착공까지 평균 1.2년, 착공부터 준공까지 평균 2.8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통계는 말 그대로 ‘평균’이다. 어떤 현장은 이보다 빨리 사업이 진행되고, 또 어떤 현장은 사업기간이 훨씬 더 걸리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빠른 경우보다 사업이 지연된 현장을 더 많이 봤다. 대부분의 정비사업 관계자들도 사업 시작부터 완료까지 통상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정비구역 지정 이전부터 사업진행을 위한 준비기간이 더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빠르고 원활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현장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재건축 추진단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은마아파트만 하더라도 2003년 말에 추진위원회가 설립됐지만 16년이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추진위원회 단계에 머물고 있다. 위의 서울시 평균기간대로라면 정비사업을 두 번 했어도 끝났을 기간동안 추진위원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10년 이상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장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어렵사리 조합설립인가를 받고서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시간 자체가 통계와는 괴리가 큰 셈이다.

사실 정비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규정하고 있는 절차만 차질 없이 이행한다고 하더라도 4~5년이 걸린다. 특별한 문제없이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게 재건축‧재개발사업이다. 그런데, 통계도 그렇고 정비사업 관계자들의 체감도 그렇고 실제 정비사업에 소요되는 기간은 교과서적인 4~5년보다 최소한 두 배 이상이 걸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추진단계마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아야 하는 인‧허가 사항이 필요이상 많고, 또 인․허가 과정에서 반려나 수정 요구 등으로 인해 질정이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정비사업이 지연되는 대표적인 사유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정비사업만큼 경기나 정책에 민감한 사업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사업이 경기나 정책에 영향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정비사업은 좀 더 예민하게 반등한다. 일례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 어려움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거나 사업성 저하에 직격탄으로 작용하는 정책변화 등이 있을 경우라면 정비사업 현장은 곧바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정비사업도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사업’의 한 종류인 만큼 사업성 저하로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크게 늘어나게 되면 사업추진의 동력 자체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추진위원회나 조합 등 사업추진주체들이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이런 외부환경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사업지연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부동산대책이 나올 때마다 정비사업 현장들이 들썩일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나 정책 변화 등의 외부적 요인과 상관없이 사업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정비사업장들은 대부분 헤어나기 쉽지 않은 늪에 빠진 경우이다. 정비사업 전문가들이 정비사업 지연 이유 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두 번째 원인인 ‘내부의 적’, 분쟁이다.

많은 정비사업장들이 일부 토지등소유자들의 집단이기주의나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불신으로 심각한 분쟁에 빠지곤 한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합원들을 선동, 사업진행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만드는 경우도 잦다. 분쟁 없는 정비사업장은 없다”는 말이 정비사업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올 정도이다.

이와 같은 내부 문제로 인한 사업지연이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정비사업의 주인이 돼야 할 다수의 조합원들이 객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합리적 근거 없이 ‘~했다더라’ 식의 ‘카더라통신’이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것이 정비사업 현장이다.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정비사업에서 사업지연은 곧 사업비용의 증가로 직결되는 만큼 각종 분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조합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정비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소돼야 할 폐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폐단이 없어지기 위해서는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도록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꼭 필요하다.

또한 토지등소유자 혹은 조합원들은 특정인이 사업진행에 문제를 제기해 사업을 정체시키려 한다면 아무 생각 없이 이에 동조해 그들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보다는 일단 문제를 제기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추진위원회나 조합 등에 사실 확인을 요구하거나 설명회 등을 요청해 의구심을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정책 및 법․제도 등으로 인해 안 그래도 복잡다단한 게 정비사업이다. 주위의 여건과 관계없이 성공적으로 정비사업을 완료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역시 주민들의 ‘단합’이 아닌가 싶다. 어려운 정비사업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이 현명한 판단이 필수이다.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는 조합원들의 ‘단합’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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