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출구전략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시공자 선정, 법대로 조합인가 이후로 환원해야 마땅

회원사 권익확보 위한 제도개선 지속적으로 전개할 터

 

“이제는 단순히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났다. 한 마디로, 정비사업의 위기상황이 최고조에 달했고, 도시정비회사들은 이미 고사상태에 놓여있다. 서울시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도시정비회사에 대한 일제점검이 얼마 전 시작됐는데, 이 점검이 끝나고 나면 과연 또 얼마나 많은 업체들이 사라졌을지 생각하기조차 싫다.”

도시정비회사들의 대표단체인 한국도시정비협회 윤도선 회장은 현재 도시정비회사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위기 상황을 지나 고사단계에 빠진지 오래”라고 말한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 법률 개정을 이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법정단체인 한국도시정비협회를 탄생시켰던 그이다. 불도저 같은 뚝심으로 정비사업 부문의 난관을 거듭 헤쳐 왔던 그이지만, 현재 도시정비회사들이 처한 어려움은 “협회의 힘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윤도선 회장은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이 처한 현실에 대해 “2003년 도시정비법이 시행되면서 도시정비회사들이 법제화됐지만, 이후 전개된 내용을 보면 법제화를 왜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비사업과 도시정비회사들을 규제만 해왔다. 업체의 무분별한 난립으로 과당경쟁이 펼쳐지면서 저가 수주경쟁과 이로 인한 용역서비스의 질 저하 등을 초래했고, 시공자 선정시기가 뒤로 미뤄지면서 도시정비회사들의 자금난을 가속화시켰음에도 여기에 대한 대안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제도개선을 위해 국토해양부와 서울시 등에 개선안을 수차례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진 것도 없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펼쳐지는 정책이 과연 무슨 실효가 있겠는가는 지금 정비사업장들이 처한 현실만 보더라도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재건축․재개발과 같은 정비사업은 낙후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도시정비법은 각각 개별법에 의해 규율되었던 재건축․재개발 등을 ‘정비사업’으로 묶고 통일된 법률로 규정함으로써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입법이 추진됐었다. 하지만, 입법과정에서 정책의 변화에 따라 실제 제정된 법은 ‘지원’이 아니라 ‘규제’에 초점이 맞춰졌고, ‘누더기법률’이라고 불릴 정도로 잦은 개정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난맥상을 만드는 원인이 됐다.

윤 회장은 “법규에 맞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법률이 갑자기 개정되면 이 여파는 크든 작든 정비사업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분쟁과 사업지연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는 한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실제 법률의 저촉을 받는 현장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면서 “한번 제정된 법률은 사라지기 힘들다. 그래서 악법도 법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도시정비법은 개정된 숫자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라는 점에서 제정과 개정 과정 모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했다.

정비사업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투기’이다. 주택이 태부족이던 시절에 주택공급의 주요수단이었던 재건축과 재개발에 ‘돈’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른바 ‘복부인’으로 상징되는 투기세력에 대해 누구나 일정 정도 적개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또한 기회가 닿는다면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재산증식의 최우선 수단으로 삼는다. 한 마디로 자신이 하면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투기가 됐든 투자가 됐든 개발이익이 포함된 금액으로 주택을 매입해 조합원 자격을 취득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정비사업 진행에도 도움이 안 된다. ‘본전’ 이상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사업진행 과정에서 별별 트집을 잡으면서 조합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합이 이를 어떻게 막겠는가. 이런 것을 막는 것이 정책당국의 역할인데, 투기방지책이 아니라 집값이 오른다고 정비사업만 규제하닌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벌어지는 것이다.”

윤도선 회장은 “그동안의 정부정책은 공급 확대보다는 투기억제에만 집착해왔다. 그것도 ‘예방’이 아니라 이미 상황이 벌어진 뒤 땜질용 대책만 내놓았다. 당연히 시장만 교란시켰을 뿐 문제점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되풀이됐다”고 지적하고 “안정적인 정부, 예측 가능한 법률, 부당한 과세가 존재하지 않아야 국가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정비사업에 있어서는 안정적인 정부와 정책도 없고, 법률도 예측 가능하게 제정 또는 개정되지 않으면서 ‘초과이익환수’나 ‘기부채납’처럼 부당한 과세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그 어떤 부동산대책이나 정비사업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고 강하게 말했다.

서울시 등의 ‘출구전략’에 대해서도 윤 회장은 날선 비판을 한다. “막다른 길로 내모는 것이 어떻게 출구전략이냐?”는 것이다. 윤 회장은 “부당할 정도로 정비사업을 규제하고, 이로 인해 사업성을 저하시켜 놓고는 주민들이 반대하니 정비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지금의 출구전략”이라며 “정비사업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정비사업 반대 이유가 뭐겠나? 정비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민들이 기대하는 것만큼의 사업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개발이익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주민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윤 회장은 “단순히 재개발구역을 해제하는 것으로는 정비사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책 없이 구역을 해제한다고 해서 주민들의 민원이 줄어들거나 경제적인 피해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업추진과정에서 발생된 채권, 채무 문제로 통제 불능의 심각한 혼란이 발생될 수도 있다”면서 “비례율이 낮은 이유는 조합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개발이익을 환수해가는 부당한 법령 때문이다. 진짜 출구전략은 이를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비사업에 대한 갖가지 규제에 대해 윤 회장은 “서울 5대 저밀도지구 재건축 당시 서울시가 시기조정을 한다고 하자 모든 단지가 후순위로 처지지 않기 위해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소형평형 의무비율을 도입하자 중대형평형의 가격이 치솟았다. 지금은 어떤가. 경제침체가 되면서 소형평형의 가격이 올라갔다”면서 “과도한 규제는 악영향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다. 규제보다는 시장경제의 흐름에 맡기고, 정책당국은 큰 틀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정비사업 제도개선과 관련해 논의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터, 일단 도시정비회사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자 윤 회장은 “시공자 선정시기”라고 말한다. “최소한 법에서 정한 조합설립인가 이후에는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정비법에서는 조합설립인가 후 건설업자를 시공자로 선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등 지자체들의 도시정비조례에서는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규정하고 있다. 하위 조례가 상위 법령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시공자 선정시기에 대해 도시정비회사들 뿐만 아니라 정비사업조합 및 추진위원회, 건설회사, 조합단체들도 꾸준히 ‘원상복귀’ 내지는 ‘추진위원회 인가 이후’로 앞당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지만 서울시 등 정책당국은 요지부동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윤 회장은 “서울시 등에서는 법리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설령 법리상 문제가 없을지라도 현실적으로 정비사업장들이 받는 피해는 어떻게 하는가. 각 단계를 밟을 때마다 크고 작은 비용이 수시로 들어가는데, 추진위원회나 조합은 이 비용을 마련할 방법이 없고, 결국 도시정비회사나 설계회사 등 협력업체로부터 차입해서 사용한다. 협력업체들의 선정기준이 ‘능력’이 아니라 ‘자금’이 된 셈이다”면서 “물론 서울시는 실제 추진비용의 70~80%를 융자 알선한다고 하지만, 이 비용을 제대로 융자받는 곳은 거의 없다. 융자조건의 까다로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임기 2년, 그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파리목숨’에 불과한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이 융자의 주체로 ‘보증’을 서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윤 회장은 “그래서 한국도시정비협회에서는 보증의 주체를 조합이나 추진위원회가 아니라 적법하게 선정된 ‘도시정비회사’로 하고, 도시정비회사에 대한 2차 보증을 법정협회인 한국도시정비협회에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으나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하면서 “서울시가 출구전략이라는 미명 하에 재건축․재개발 구역을 대폭 해제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을만들기 등에 막대한 금액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 금액을 사업성이 열악한 재건축․재개발 지역에 지원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비사업에 대한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 많은 도시정비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사실상 폐업상태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런 도시정비회사들의 상당부분은 용역비를 회수하지 못해 자금난에 빠져서 ‘흑자도산’한 경우이다. 때론 경쟁자로, 또 때로는 동료로 도시정비사업을 이끌어오던 회원사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보는 윤 회장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윤도선 회장은 “어렵고, 또 이 어려움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두렵기까지 하다. 그래도 도시정비회사의 대표로서, 또 도시정비회사를 대표하는 법정단체의 회장으로서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솔직히 이젠 자신감을 잃었다”면서 “그래도 이 어려움이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협회를 추스르고 회원사들의 힘을 모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도시정비협회와 도시정비회사들의 고군분투가 정당한 보상을 받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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