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묻기 위한 요건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개발계획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뿐만 아니라, 추진 과정 중에서 계획이 변경되거나 아예 취소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일면 피해를 입게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구역 지정 추진 철회로 인하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이와 관련된 판결이 나와 소개하고자 한다. 개발 대상지 토지를 소유한 한 개발업체가 “지구단위계획의 추진 취소로 피해를 입게 됐다”며 김해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창원)2013나2514)]에 대한 부산고등법원 창원제3민사부의 판결이다.

소송을 제기한 측은 ▲이 사건 부지는 처음부터 개별입지방식에 의한 공장설립 승인이 가능했으므로 원고가 애당초 이주희망업체들에게 개별 필지로 나누어 매도함으로써 적지 않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여건이 됐음에도, 피고는 관할 행정청으로서 제2종 지구단위계획의 입안권자인 지위를 앞세워 위 부지는 그와 같은 개별방식에 의한 공장설립 승인이 불가능한 것처럼 원고를 속여서 개별적인 매도 기회를 박탈하는 한편, 위 부지를 장차 제2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줄 것처럼 언동해 과도한 부담을 종용한 점 ▲건설교통부 산하 중앙도시계획위원회가 이 사건 부지를 이 사건 계획구역으로 배정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도시기본계획’ 조건부 승인은, 피고의 의지에 따라서 이를 얼마든지 저지할 수 있었음에도 피고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를 막지 않은 점 ▲이 사건 부지는 ‘미개발지’가 아니기 때문에 위와 같이 중앙도시계획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은 도시기본계획에 의하더라도 이를 반드시 ‘보전관리지역’으로 지정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없었음에도 피고는 아무런 원칙이나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이 사건 부지의 대부분을 보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버린 점 등을 문제로 지적하며 일정액의 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원고측의 주장과는 달랐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는 먼저 “행정청의 행위에 대해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행정청의 견해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데에 대해 그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는 등의 요건이 필요한데, 위 요건에서 말하는 귀책사유라 함은 행정청의 견해표명에 하자가 있음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 등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고, 귀책사유의 유무는 상대방과 그로부터 신청행위를 위임받은 수임인 등 관계자 모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지방자치단체 개발에서 누가 얼마의 지식․정보를 가지고 있고, 공공개발의 필요성이 어떻게 변해가며, 누구의 제안․주도로 지방자치단체 개발이 진행되고, 법률상 권한이 어떻게 배분돼 있으며, 진행 과정에서 일방적인 지시․처분만이 존재하는지, 협상․협의․지식과 정보 교환이 존재하는지도 배상책임 존부를 판단할 때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위 사안과 관련해서는 ▲원고는 부동산개발 관련법 체계와 그에 따른 행정청의 실무 분야에 상당한 전문성과 식견을 갖춘 업체로 보이는 점 ▲이 사건 부지가 이 사건 계획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위 부지를 소유한 원고로서는 개별입지방식에 의한 공장설립을 전제로 하여 각 필지를 개별적으로 매도할 때보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으므로, 원고가 이 사건 계획구역 지정의 성공에 가장 큰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로서 그 추진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계획구역 지정은 이른바 ‘계획행정’의 특성상 그 확정까지 장시간이 소요되고 그 결과도 매우 유동적인데, 그에 따라 원고도 피고에게 ‘이 사건 계획구역 지정을 위한 도시계획심의 과정 중 수정사항이 발생할 때에는 심의 결정사항에 준하여 변경하겠다’라는 취지로 확약하였던 점 ▲피고가 이주희망업체들의 민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 사건 부지 일부에 개별입지방식에 의한 공장설립을 승인하자, 부산지역 환경단체와 부산광역시가 즉각 위 공장설립승인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오는 등 이 사건 부지를 공장용지 등으로 개발하는 내용의 이 사건 계획구역 지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됐던 점 등을 지적하고 “원고로서도 이 사건 계획구역 지정이 향후 건설교통부 산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도시기본계획 승인과 피고의 상급 행정청인 경상남도지사의 결정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얼마든지 좌절될 수 있다는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 원고가 이 사건 계획구역 지정이 전적으로 피고에 의해서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신뢰한 데에 귀책사유가 없다고 할 수 없으므로, 피고의 신뢰보호의 원칙 위반을 전제로 한 원고의 위 주장은 이러한 점에 있어서도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또한 재판부는 “설령, 피고가 위 계획구역 지정에 뒤따르게 될 여론 및 환경단체 등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위 계획구역 지정을 포기하고 이를 보전관리지역으로 지정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행정행위에 재량권을 가진 피고의 위와 같은 처분이 재량을 일탈․남용했다거나 곧바로 원고에 대한 불법행위가 된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의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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