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늘 / 자유기고가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김동환 시인의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시의 첫 부분이다. 노래로도 만들어졌으니 ‘낭송’을 넘어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는 사람이 제법 될 터이다. 그런데, 이 시의 첫 마디에 나오는 ‘산 너머’에서 ‘너머’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너머’와 소리가 같은 ‘넘어’ 때문이다.

먼저 ‘너머’는 ‘높이나 경계로 가로막은 사물의 저쪽 또는 그 공간’을 의미하는 명사이다. 반면 ‘넘어’는 ‘일정한 시간, 시기, 범위 따위에서 벗어나 지나다’나 ‘높은 부분의 위를 지나가다’, ‘경계를 건너 지나다’는 뜻을 가진 ‘넘다’라는 동사의 활용형이다.

‘너머’와 ‘넘어’가 헷갈리는 것은 단순히 소리가 같기 때문만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너머’와 ‘넘어’ 어느 것을 사용하더라도 맞춤법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뜻은 달라지겠지만). 예를 들어보자.

‘산 너머’와 ‘산 넘어’는 맞춤법상 둘 다 맞는 표현이다. 다만, ‘산 너머’는 ‘산’이라는 사물 저쪽의 어느 ‘공간’을 의미하고, ‘산 넘어’는 ‘산’을 넘어서 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산 너머 남촌에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할 때는 ‘산을 넘어’ 직접 가봐야 할 터이다. 물론 ‘산 넘어 산’이라는 말처럼 고생스러울 수도 있겠다.

이처럼 ‘너머’는 의미론적으로 ‘공간이나 공간의 위치’를 나타내고, ‘넘어’는 ‘산을 넘어 간다’처럼 동작을 의미한다.

그래도 헷갈린다면 명사 ‘너머’는 “‘산 너머/고개 너머/저 너머/창문 너머’ 파랗다 못해 보라색을 머금은 하늘이 눈에 싱싱했다”처럼 높이나 경계를 나타내는 명사 다음에 주로 쓰인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산울림의 노래처럼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고’, ‘어깨 너머로 배울 때’ 사용하는 단어가 ‘너머’이다.

반면에 ‘넘어’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나 ‘작은 언덕을 넘어 도착한 마을에는’처럼 ‘무엇이 무엇을 넘다’의 문형으로 쓰이고, ‘일정한 기준이나 한계 따위를 벗어나 지나다’의 뜻을 나타내는 동사 ‘넘다’를 써야 할 때 사용한다.

‘너머’와 ‘넘어’처럼 헷갈리는 말을 하나 더 소개해보자. ‘웬’과 ‘왠’도 적잖이 헷갈린다. 하지만 ‘웬일인지, 아니면 왠일인지’ 헷갈리지 않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게 또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라는 뜻을 가진 부사 ‘왠지’를 빼고는 모두 ‘웬’으로 쓰면 된다. ‘어찌 된’ 또는 ‘어떠한’ 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관형사는 ‘웬’ 하나뿐이다. 다만, ‘웬 떡이냐?’나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처럼 관형사로 쓰일 때의 ‘웬’은 띄어 써야 하지만 ‘웬일’은 그 자체가 명사이고, ‘웬걸’은 감탄사, ‘웬만큼’은 부사이니 붙여 쓰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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