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독립, 용맹을 상징하는 호랑이로 묘사되는 한반도는 산악지형이 많아 일찍부터 호랑이가 서식했으며, 단군신화와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 및 각종 민화 등에도 호랑이가 등장하고 있다.

호랑이는 잡귀들을 물리치는 신성한 영물로, 혹은 재난을 몰고 오는 난폭한 맹수로, 또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의리 있는 동물로, 그리고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순진하고 어리석은 동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처럼 호랑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국토의 지명에도 예외 없이 반영돼 있다.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아 우리 삶의 터전인 국토와 호랑이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 왔는지를 파악해 보자.

국토지리정보원이 따르면, 우리나라 자연지명 속에 포함돼 있는 호랑이 관련 지명은 389개가 있다. 전국의 자연지명 약 10만개 중 약 0.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그 중 전라남도가 74개로 가장 많았고, 경상북도가 71개, 경상남도가 51개 등의 순이다. 종류별로는 마을명칭이 284개, 산의 명칭이 47개, 고개명이 28개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유래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우선 호랑이 모양과 관련된 지명이 있다.

모양관련 지명중에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비유한 복(伏, 엎드리다)자를 사용한 지명(복호, 호복, 복림 등)이 다수 있는데, 일례로 전남 고흥 과역면의 ‘복호산’을 들 수 있는데, 달이 지고 날이 새므로, 호랑이가 가지 못하고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반도 전체를 호랑이로 묘사해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고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하며 이 지역이 호랑이 꼬리부분에 해당한다고 해 지명을 변경하게 된 사례도 있다.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의 ‘호미곶’은 원래 ‘장기곶’이었던 곳으로 호랑이의 모양을 본떠서 지은 지명 중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뒷산의 지형이 범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으로 마치 범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범직이’(마을, 충남 연기군 남면), 포구가 있던 곳에 생긴 마을로 이곳에 있는 바위형태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 형상이라 해 ‘호구포’(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라 하는 등 지형을 호랑이의 형태로 표현해 유래된 지명이 여럿 있다.

한편, 호랑이의 출현설화와 관련된 지명도 있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의 ‘저고리골’(마을)은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저고리만 남겨놓았다 해 유래됐으며, 전남 구례 산동면의 ‘견두산(犬頭山)’은 호랑이에게 사람이 물려죽는 일이 많다고 해 읍내에 호석(虎石)을 세우고 ‘호두산(虎頭山)’이라 부르던 산 명칭을 ‘견두산(犬頭山)’으로 개명한 후 호환(虎患)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거나 괴롭힘으로 유래된 지명으로는 경기도 양평의 ‘비호고개’, 경남 산청의 ‘원팅이’, 경북 경주의 ‘호명’ 등이 있는데, 호랑이가 이렇게 악행만 저지른 것은 아니다.

경남 거제시 둔덕면의 ‘호곡’마을처럼 효성이 지극한 상제가 시묘살이를 하던 삼년동안 큰 호랑이가 늘 상제를 따라 다니며 보호해 줬다 하는 유래를 비롯해, 효성이 지극한 효자가 부친의 병을 고치려고 약을 구해 떠나려 할 때 호랑이가 붕어 한 마리를 물어다 줘 이 붕어로 부친의 병을 고쳤다는 전설을 가진 경북 영천시 화산면의 ‘효지미’ 마을처럼 호랑이의 긍정적인 면도 지명에 반영돼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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