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시공자 분쟁 예방 위해 설계도서에 의한 내역 입찰 필요

사단법인 주거환경연합과 한국재건축재개발조합협회 준비위원회는 지난 4월 20일 국회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윤석열 당선인 공약이행 및 재건축‧재개발 규제개선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조합·추진위 대표자 및 전문가들이 정비사업 현장의 주요 이슈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주제 발표해 눈길을 모았다.

결의대회에서 발표된 주요 이슈 중 시공자 선정시기와 관련된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살펴보자. - 편집자

 

이안CM 안경환 대표(남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지난 4월 20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윤석열 당선인 공약이행 및 재건축‧재개발 규제개선 촉구 결의대회’에서 주제발표 하고 있다.
이안CM 안경환 대표(남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지난 4월 20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윤석열 당선인 공약이행 및 재건축‧재개발 규제개선 촉구 결의대회’에서 주제발표 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서울시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사업과 관련한 조합과 시공자 간 공사비 증액에 따른 갈등이 밝혀지면서 각 조합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해당 문제는 비단 둔촌 주공아파트뿐만 아니라 여타 많은 조합들도 겪을 수 있는 문제이고, 실제로 상당수 현장에서 겪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둔촌주공아파트는 ‘단군 이래 최대의 재건축사업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큰 재건축 현장(1만2302가구 공급 예정)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공사비 문제로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시공자측이 공사비를 당초 2조6708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약 5586억원 증액하려고 했던 것을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가 제동을 걸었다. 공정률 52% 상태에서 발생한 조합과 시공사업단의 갈등은 공사중단, 유치권행사, 계약조건해지 등의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시공자 선정 방식이 ‘시공사 선정 당시 내역입찰’이 아닌 ‘연면적에 ㎡당 금액을 곱해 가계약을 체결하는 단가도급’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공사비 증액 내역을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만큼 문제가 된다.

한편, 본 계약시점 이전에 관리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생산자 물가지수를 적용 공제한 공사비 10% 증가’의 경우 한국부동산원에서 공사비 검증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검증 결과에 따라 조합과 시공자 사이에 협상을 거쳐 총회 결의 후 본 계약을 진행하게 된다. 적정한 공사비인지 여부를 객관적이고 철저한 절차를 거쳐 판단할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한 지점이다.

먼저, 조합설립 단계에서 시공사를 선정할 경우 적산에 의한 내역입찰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비계획을 토대로 시공사 선정용 설계도서를 마련하고, 그렇게 준비한 시공사 선정용 설계 도서를 입찰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비용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차후 공사비 증액에 따른 분쟁 및 갈등을 고려하면 조합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판단된다.

기존처럼 단가도급방식 하에서 공사비 검증에 필요한 사업시행인가에 따른 설계도서(설계도면, 시방서, 구조계산서)를 근거로 시공자가 내역서를 만들어 제출해 검증 받는다면, 애초에 설계도서가 미비한 시점인 탓에 사업시행인가에 따른 내역서와의 비교가 실질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제안시점과 실행시점에서의 이견이 발생하면서 조합과 시공자 사이의 갈등이 반복될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현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놓고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애초에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9조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조례를 통해 ‘사업시행인가 이후 설계도서에 의거해 시공자를 선정’하도록 한 것도 이러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하지만, 이와 같이 사업시행인가 이후 시공자를 선정함에 따라 사업추진의 비효율성 및 초기 사업비 조달의 어려움 등 각종 부작용이 발생했다. 시공자에 비해 현저하게 자금동원력이 떨어지는 정비회사와 설계사 등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초기자금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정비회사의 경우 정비사업의 컨트롤 타워로서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에 양질의 컨설팅을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비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돕는 ‘컨설팅’이 주업무임에도 ‘자금 동원력’에 따라 능력이 평가되는 이상한 구조가 성립돼 있다. 즉, 본연의 업무보다 시공자를 선정해 사업자금 충당이 원활해질 때까지의 ‘사업추진자금’을 대여해주는 ‘금고’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고, 이 과정에서 일부 업체들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업체선정과정에 개입하는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됐다.

익히 아는 바처럼, 서울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을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규정함으로써 사업추진의 비효율성 및 초기 사업비 조달 어려움 등의 문제를 초래해왔다. 이에 그동안 추진위․조합뿐만 아니라 정비회사 등에서도 시공자 선정시기를 최소한 조합인가 시점으로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을 수없이 개진해왔었다. 현장의 현실적인 목소리에 묵묵부답이던 상황에서 다행스럽게도 지난 3월 10일 시공자 선정 시기를 앞당기는 도시정비조례 개정안이 발의됐고, 대선과정에서 정비사업을 비롯한 부동산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렬 정부의 5월 10일 출범에 각 현장들이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물론 정비사업 추진위와 조합이 조례 개정안 발의와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정책 완화에 기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막연한 장밋빛 환상을 갖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발의된 개정안에 따르면 정비계획이 수립된 조합이 2/3 이상의 조합원 동의를 받은 경우 조합 총회를 통해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재원조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 초기 사업장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시공자 선정 관련 공사비 인상에 대한 방지책이 필요하다.

시공자 선정 시기 조정은 정비사업을 규정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과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가 합치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비사업 재원조달의 주요 통로가 확장되고, 집값 안정의 핵심인 주택공급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열쇠이기도 하다.

다만, 무분별한 인상, 과도한 인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적산에 의한 내역입찰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비계획을 토대로 시공사 선정용 설계도서를 마련하고, 그렇게 준비한 시공사 선정용 설계도서를 입찰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이 다소 소요되더라도 차후 공사비 증액에 따른 분쟁 및 갈등을 고려하면 조합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다.

적산내역을 마련할 때 필요한 양식으로는 서울시가 2019년 5월 30일 고시한 ‘정비사업의 표준공동사업시행협약서’를 준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협약서 양식의 내역에 의해 설계도서를 만들어 입찰 절차를 진행하고, 차후 본계약 시점에 변경사항이 있으면 비교 검증이 가능하기에 분쟁의 소지가 덜하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정비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원활하게 조달하려면 조합설립인가 시점에서의 시공사 선정이 필요하며, 공동사업시행협약서를 통한 내역입찰을 통해 공사비 관련 분쟁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단가도급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한 사업장이라면 사업시행인가 도서에 의한 적산내역서를 만들어 한국부동산원의 검증 이후 본계약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끝으로 첨언하자면, 공공복리증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 다소의 규제가 불가피하더라도, 그동안 정비사업에 대한 규제는 ‘규제를 위한 규제’가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피할 수 없었다. 규제가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지 규제 대상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이견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득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정책 목표, 시정 목표의 달성을 위해 형식적으로 의견을 청취한 후 나오는 현실과 동떨어지는 법과 제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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