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리모델링은 건축물의 노후화를 억제하거나 기능 향상 등을 위해 대수선 또는 일부 증축하는 것을 말한다. 건축법에서는 20년 이상 경과된 건축물(주택법의 경우 15년 이상 경과한 공동주택이 대상)에 대하여 증·개축 등의 리모델링을 실시하는 경우에는 건폐율·높이제한 등의 건축 기준을 완화하여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재건축은 도로·상하수도·가스공급시설·공원·공용주차장 등과 같은 정비기반시설은 양호하지만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주택을 새로 짓는 사업을 말한다.

사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택시장에 있어서 리모델링은 이른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존재가치가 미미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신규주택을 공급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재개발과 재건축에 국한됐다. 특히, 재건축은 이미 기반시설이 충분히 갖춰진 곳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주택시장을 선도해왔었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온 것은 재건축단지를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급등한 2000년대 중반부터이다. 1970~1980년대에 지어진 저층 아파트단지들의 노후화가 심각해지면서 탄생한 공동주택 재건축은 관련 법이 ‘주택건설촉진법’과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 산재해 있어 혼선이 빚어졌었다. 이런 혼란을 해소하고 재건축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2003년 새로 제정된 법률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다.

하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태동할 무렵부터 재건축주택의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 재건축 활성화법이 아니라 규제법 양상으로 선회했고, 현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재건축사업이 기나긴 침묵에 접어들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재건축이 주춤하는 사이에 부각된 것이 리모델링이다. 리모델링의 부각은 정책당국에서 재건축 규제에 따른 주택시장 침체의 물꼬를 하나쯤 터주기 위해 은연중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지만, 재건축사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변화 측면도 있었다. 즉, 5층 이하 저층 아파트단지들의 재건축이 거의 마무리되면서 10층 이상 고층아파트의 재건축이 촉발됐는데, 정책당국의 재건축 규제조치에 따라 이들 고층아파트들이 재건축의 전제조건인 ‘안전진단’을 신청할 수 있는 건립연한이 대폭 늘어나게 됐고, 결국 재건축을 시작할 수 없게 된 고층아파트들이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통로가 리모델링밖에 없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리모델링의 틈새시장 진입은 쉽지 않았다. 리모델링의 사업성과 직결된 ‘수직증축’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보다 넓게 짓는 수평증축은 가능했지만, 세대수 증가를 가져올 수직증축은 안전성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시행되지 않았다. 세대수 증가는 일반분양분의 증가를 의미하고, 일반분양 수익은 곧 리모델링 조합원의 분담금 감소와 직결된다.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모두 ‘사업성’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추진 여부가 결정된다. 그런데 수직증축 불허로 인해 사업성이 떨어지자 주민들이 리모델링을 추진할 동력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고, 결국 리모델링 활성화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지부진하던 리모델링이 다시 관심을 모은 것은 불과 1~2년 전이다. 리모델링 관련 제도가 조금씩 완화된 데 이어 드디어 2013년말 ‘수직증축’을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해 4월부터는 공동주택을 리모델링할 때 최대 3개 층까지 수직증축이 가능해지고, 가구수도 기존 10%에서 15%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리모델링 수직증축 가능에 따라 강남권 고층단지들과 분당 등 1기 신도시 지역들이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리모델링 시대’가 개막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리모델링의 봄은 길지 않았다. 지난해 발표된 ‘9.1대책’에서 정부가 재건축을 옥죄어 온 각종 규제들을 해제하겠다고 밝혔고, 실제로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 조합원 주택공급 규제 완화 등을 규제해온 ‘주택법’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그리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2014년말 국회에서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부동산3법’에 더해 재건축 가능 연한을 기존 40년에서 30년으로 대폭 줄이고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이 금년 1월20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리모델링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게 됐다.

시행령 개정으로 서울의 경우 1987년 이후 건설된 아파트부터 2년에서 최대 10년간 재건축 연한 단축 혜택을 보게 됐다. 재건축 차선책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해오던 단지 주민들 입장에서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재건축이 가능해지니 굳이 리모델링을 추진할 이유가 없어지게 됐고, 이에 따라 사실상 리모델링 시대는 개막을 선포하기가 무섭게 문을 닫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리모델링은 아예 끝난 것일까? 상황은 조금 복잡하다. 특히 분당 등 1기 신도시는 여전히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재건축 가능연한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재건축을 추진하기에는 ‘사업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기존 용적률 자체가 높아 재건축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대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 상당수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유리한 단지들도 있다. 기존 용적률이 높은 단지에선 재건축으로 늘릴 수 있는 용적률이 제한돼 기존 전용면적 기준으로 85㎡ 이하는 40%까지, 85㎡ 초과는 30%까지 넓힐 수 있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유리할 수 있고, 기존 용적률이 낮은 단지는 재건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재건축 연한 단축이란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리모델링은 재건축으로 사업을 갈아타거나 수직증축 리모델링 선택 또는 수직증축 없는 수선형 리모델링 등으로 세분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의 키를 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 리모델링과 재건축의 신호등 역할을 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분당을 품고 있는 성남시는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기금을 조성하는 등 제반 지원책도 마련해놓고 있다. 반면 평촌신도시가 있는 안양이나 중동과 산본신도시가 있는 부천시와 군포시는 아직 리모델링 관련 기본계획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놓고 1기 신도시 주민들의 고민이 깊어가는 해가 될 전망이다.

- 본 칼럼은 대한제당 웹진 2015년 3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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