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지난 3월 12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기존 2%에서 1.75%로 0.25%p 전격 인하했다. 사상 첫 1%대 기준금리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일단 기준 금리 인하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여진다. 고금리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에게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실제로 최경환 부총리나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 등도 직간접적으로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촉구하는 발언을 심심찮게 내놓은 바 있다.

사실 대부분의 서민들은 기준금리 인하가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것이 있는 경우 낮은 금리의 상품으로 갈아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보통이다.

기준금리 인하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부동산시장이다. 특히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전세가격이 치솟는 요즘, 기준금리 1%대 시대는 곧 대출금리 2%대 시대를 의미하고, 이는 곧 매매수요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현재 임대시장은 그야말로 ‘대란’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심각하다. 전세가격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지 오래인데, 그나마 높은 가격을 부담하고서라도 구할 전세조차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 속도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 물량이 월세로 전환됨에 따라 세입자들의 부담이 커지자 국토부에서도 월세대출 및 전세반환보증보험 가입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자격요건에 제한이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실제로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전세나 월세가격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전․월세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매매수요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준금리 인하가 매매수요를 더욱 촉발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매매수요는 다소 기형적인 면이 없지 않다. 준비된 상태이거나 필요에 의해서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전세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차선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상적이라면 매매수요가 늘어나면 전․월세시장이 안정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매매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전․월세의 상승곡선이 수그러지지 않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게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대규모 이주수요 발생을 꼽을 수 있다. 한동안 침체상태에 있던 재건축, 그중에서도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이주가 올해 줄지어 진행된다. 이들 재건축 단지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대거 인근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일대의 전세주택이 품귀현상을 빚게 됐다. 특히, 저층 재건축단지들은 대개 주민의 70~80%가 세입자이다. 20~30% 정도인 조합원은 재건축 과정에서 이주비를 받게 돼 세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에 여유가 있다. 이들이 일차적으로 강남권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는 반면,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세입자들은 형편에 맞춰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할 수밖에 없다. 서울과 수도권 전지역에 걸쳐 전․월세 상승 추세가 멈추지 않는 데에는 강남권에서 시작된 ‘이주 엑소더스’가 도미노처럼 다른 지역으로 번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3년에 한번씩 높아진 전세가격 때문에 고충을 겪어야 했던 무주택자들에게 최근의 전․월세 가격 상승은 ‘더러워서라도 이번 기회에 내 집 마련하고 만다’는 심리를 갖게 만들었다. 담배가격의 대폭 인상이 금연열풍을 불러온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현정부의 부동산정책과 최근의 기준금리 인하를 놓고 일부 비판적인 견해를 펼치는 사람들은 ‘정부가 빚내서 집을 사라고 강요한다’고 비난한다. ‘하우스 푸어’ 양산과 ‘집값 폭락’ 가능성이 높다며 관망할 것을 권하는 ‘비관론’도 여전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주택자라면 지금 주택을 구입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우스 푸어’는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을 기대해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살 때 발생한다. 즉, 무주택자보다는 이미 주택을 보유하고 있던 사람이 ‘투자’ 목적으로 더 구입하거나 강남권 진입 등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경우이기 쉽다.

투기나 투자 목적이 아닌, 그저 내 집 한 채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신규주택 분양이나 기존주택 매입을 고려하는 사람에겐 전․월세 가격 폭등 속에 대출금리 인하라는 호재가 생긴 지금이 내 집 마련의 적기가 아닐까 싶다.

참고로 1년여 전인 2013년 11월호에 “결론적으로, 남은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뿐이다. 폭등하는 전․월세 시장에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불안심리를 극복하고 주택을 구입할 것인지이다. 무리해서 주택을 매입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여건을 갖췄음에도 불안감 때문에 집 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주택의 두 가지 가치 가운데 투자목적의 가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와 ‘주거’ 모두 만족하겠다는 것은 욕심에 불과하다. ‘투자’라는 안경을 벗으면 보다 경제적으로 주거의 안정을 꾀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라고 썼었다.

지금 역시 이 말은 유효하다. 아니, 당시보다 더 심각해진 전․월세 상황을 감안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 있다.

- 본 칼럼은 대한제당 웹진 2015년 4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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