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아파트는 이제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이자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서는 아파트 거주 여부가 아니라 어느 지역의 어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지가 부의 척도가 됐고, 이제 브랜드는 아파트의 가치뿐만 아니라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브랜드 아파트 대중화에 따라 소비자들도 아파트 선택에 있어 브랜드를 주요한 요건으로 삼기 시작했고, 그 결과 브랜드가 아파트 분양률과 가격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여러 연구 결과 소비자가 선호하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는 주택구매 행동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브랜드로 인한 가격 프리미엄이 형성되고, 이러한 프리미엄을 지불하더라도 브랜드 아파트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구매 패턴이 자리 잡게 됐다.

현재 아파트는 거주자의 생활수준 전체를 나타내는 지표이자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 개인이 소비하는 재화 중 가장 고가이다. 또한 제품 평가 요인이 많을 뿐 아니라 소비주체가 개인이 아닌 가구(household)이고 평생 동안 거래 빈도가 매우 낮은 상품이다.

주택구입은 통상 가구의 제반 특성과 공급되는 주택가격 등의 조건 및 물리적 특성에 따라 결정된다. 즉, 가구의 소득수준이나 가구원 수, 직업, 현 거주 주택유형 등이 주택구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울러 가격조건이나 교육 등 제반 입지여건, 평형, 단지 규모, 시공회사 등 다양한 요건들이 구입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아파트 구입이라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앞두고 소비자는 그 어느 제품을 구입할 때보다 능동적으로 정보를 탐색하고, 신중하게 평가하고 비교하며 의사결정을 한다. 하지만 아파트는 지역상품으로서 제품정보가 불충분하고, 제품의 통일성이 결여되어 제품간 비교가 어렵다. 또한 아파트를 분양 받는 경우라면 완성품을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예정상품인 모델하우스를 보고 판단해야만 한다. 또, 기존 중고 주택을 구매하더라도 감수해야 하는 위험요소가 매우 크다.

그래서 소비자는 구매결정시 기존 입주자 및 거주 경험자의 평가나 제품 및 기업이미지에 의존하는 성향이 비교적 크다. 따라서 아파트 구입시 위험을 줄이고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조금 더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유명 브랜드 아파트를 구매하려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배치(향), 마감자재, 평면구조와 교통, 교육환경이 주택 구입시 중요요인으로 작용했으나, 90년대 중반에는 전반적으로 주변 환경이나 교육, 교통 여건 등 입지여건이 매우 높은 순위의 요인으로 나타났고, 이후 90년대 후반부터는 시공업체의 브랜드 또는 인지도가 중요요인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투자가치’와 함께 ‘브랜드’가 주택구입의 결정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주택산업연구원이 2005년 실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아파트를 구입할 때 투자가치, 입지여건, 브랜드, 주택특성, 단지특성의 순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투자가치를 가장 우선시한다는 것은 곧 주택을 구입할 때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하더라도 만약 가격상승의 기대가 없으면 구입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전히 소비자들은 주택에 대해 주거 목적 자체보다는 투자적 가치재로서의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은 아파트의 브랜드가 주택구입 결정에 있어 단지특성이나 주택특성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입지여건이 비슷할 경우 브랜드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통해서 얻게 된 품질에 대한 신뢰성과 고급성 등 더욱 질 좋은 주택에서 살고자 하는 소비자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2012년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브랜드 아파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 가격이 높을수록, 서울 강북지역보다는 강남지역에서 보다 높은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다. 강․남북지역을 기준으로 연도별 브랜드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가격을 통해 브랜드의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강남지역은 브랜드 아파트의 브랜드 변수의 가격 결정력이 2009년 이후 점차 증가하고 있는 반면, 강남 이외 지역은 총세대수, 세대당 주차대수, 평형의 변수 등 실질적인 가격요소가 보다 높은 영향력을 나타냈다. 결국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비자일수록 브랜드에 민감하고, 여유가 적은 실소비자는 브랜드보다는 단지특성이나 거주의 편리성 등 실질적인 요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셈이다.

실제로 같은 지역일 경우 유명 브랜드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차이가 크게 벌어지기도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심리적 만족감과 투자가치도 높으니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다만, 브랜드와 건설사의 시공능력평가액 순위가 일치하지 않고, 최근에 들어서는 중견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가 상위권에 속하는 등 브랜드 간 선호도 격차가 크게 좁혀지고 있어 현재의 브랜드 가치만 고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아파트의 브랜드 선호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내 집 마련이라는 일생일대의 선택을 앞둔 소비자는 이래저래 고민해야 할 게 더 많아졌다.

- 본 칼럼은 대한제당 웹진 2015년 8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저작권자 © 도시정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