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멜로디가 함께하는 경기도 여행지

때론 말을 뛰어넘는 강력한 언어가 되고, 때론 성난 파도 같은 마음을 잠재우기도 하며, 밋밋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하는 것. 바로 음악이다.

꿈결 같은 멜로디와 함께 하는 문화 공간을 찾아 경기도로 떠나보자.

 

◇ 클래식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성채 ‘파주 황인용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난 클래식을 모른다. 그래도 소리는 느낄 수 있다.”

‘황인용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에 대해 누군가가 남긴 리뷰다. 2004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들어선 카메라타는 아날로그 사운드를 즐길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다. 주인은 1970~80년대에 아나운서 겸 라디오 DJ로 맹활약했던 방송인 황인용 씨. ‘밤을 잊은 그대들에게’ 위로를 건네던 그가 오늘날에는 숨 가쁜 일상에 음악을 잊은 이들에게 선율의 아름다움을 일러준다.

카메라타 건물은 한국 대표 건축가 조병수 씨의 솜씨로, 무덤덤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황홀한 음악의 세계가 펼쳐진다. 100살 된 빈티지 오디오와 1만5000여장의 LP,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가 쌓아 올린 거대한 성채나 다름없다. 기둥 하나 없이 3층 높이로 툭 터진 공간을 가득 메우는 건 오직 피아노 소리뿐. 곡과 곡 사이의 적막도 여기에서는 음악이 된다.

카메라타의 요소요소는 음악을 위해 존재한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첫 번째 예가 압도적인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이다. 1920년대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사가 제작한 극장용 스피커, 1930년대 독일에서 제작된 클랑필름 스피커가 어우러져 깊고 풍부하고 명징한 클래식을 들려준다.

선곡은 베테랑 DJ, 황인용 씨 마음대로다. 바로크 시대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명연주자의 음반을 LP나 CD로 틀어준다. 터치 한 번에 재생되는 디지털 음원 말고, 오래도록 살아남아 마음 깊숙한 곳을 울리는 음악들이다.

공간 운영 방식도 눈에 띈다. 스피커를 향해 일렬로 배치된 의자들,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진동 벨을 두지 않은 주문 시스템은 ‘음악 감상’이라는 목적으로 귀결된다.

한편, 카메라타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방’ 또는 ‘동호인의 모임’을 뜻한다. 16세기 말, 피렌체의 예술 후원자인 조반니 데 바르디 백작의 살롱에 드나들던 예술가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주소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83

‧ 이용시간 : 평일·주말·공휴일 11:00~21:00 / 목요일 휴무

 

 

◇ 책을 펼치니 음악이 흘러나왔다 ‘의정부음악도서관’

의정부 경전철 발곡역 인근 장안근린공원에 자리한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음악과 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음악 전문 공공도서관이다. 미군 부대가 오랫동안 주둔한 의정부의 지역색을 살려 블랙 뮤직(힙합·R&B·재즈·블루스·소울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도한 음악)을 특화 장르로 선정, 이를 바탕으로 공간을 디자인하고 운영한다. 계단 벽을 힙합 감성 가득한 그라피티로 채우고, 블랙 뮤직을 주제로 한 장서를 빼곡히 비치한 이유다.

1만㎡ 부지에 들어선 3층 규모 도서관은 음악·책·공간이 어우러진 예술적 아지트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독서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느슨한 선율은 음악으로 떠나는 여행의 촉진제가 돼준다. CD 6280여장, LP 1200여장, 음악 주제의 책 1180권(2022년 3월 기준)에서 보물 같은 음악을 발견할지도 모를 터다.

음악 도서관답게 책은 물론, CD·LP·DVD·악보 등 양질의 음악 자료까지 대여해주는데, 의정부시민뿐 아니라 다른 지역주민에게도 열려 있다.

공간의 면면도 음악을 듣는 순수한 기쁨을 일깨운다. 1층 북스테이지에는 음악·성인·아동 도서 5000여권을 고루 비치, 온 가족이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M층(2층)은 햇볕 드는 창가를 마주한 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고전문학과 시집, 2800여장의 악보를 뒀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통창으로 녹음 짙은 공원이 펼쳐진다.

이외에도 재즈·블루스, 클래식, 힙합 등 온갖 음악 장르를 아우르는 CD와 LP가 비치돼 있는 3층 뮤직스테이지에서는 CD 플레이어나 턴테이블로 아날로그 음악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다. 고사양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오디오룸에서 ‘귀 호강’을 경험하거나, 스타인웨이 자동 연주 피아노가 있는 뮤직홀에서 연주를 감상해도 좋겠다.

‧ 주소 : 경기도 의정부시 장곡로 280

‧ 이용시간 : 화~금요일 10:00~21:00, 토~일요일 10:00~18:00 / 법정공휴일(월요일·일요일 제외) 휴무

 

 

◇ 한국 록의 발원지에 울려 퍼지는 음악 ‘동두천 두드림뮤직센터’

1960년대 보산동의 늦은 저녁, 드럼 소리가 쩡쩡한 클럽에 기타를 멘 남자가 들어선다. 그가 무대에 오르자 미군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그의 이름은 신중현, 한국 록 음악의 대부다.

신중현은 보산동에서 한국 최초 록 밴드 ‘Add4(애드 포)’를 결성하고 무대 경험을 쌓았다. 보산동을 ‘한국 록의 발원지’라 일컫는 이유다. 조용필, 패티 김, 나미 등 당대 최고 가수들도 이곳을 거쳤다. 미군 부대 재배치 후 쇠락한 골목에 생기가 돈 건 2017년 두드림뮤직센터가 개관하면서부터다. 원도심을 되살리는 K-ROCK 빌리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공간은 50여년 전 보산동에 울려 퍼지던 록 스피릿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두드림뮤직센터 건물의 전신은 남루한 관광클럽. 오래된 클럽을 한국 밴드음악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곳으로 재탄생시켰다. 1층에는 100석 규모의 공연장, 2층에는 전시실, 3층에는 녹음실과 연습실이 자리 잡고 있다.

공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곳은 단연 1층 공연장. 아티스트와 관객석 간의 거리가 고작 대여섯 걸음일 정도로 가까워 말 그대로 ‘코앞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월 2회씩 정기 공연을 열고 있다.

2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한쪽 벽을 뒤덮은 색색의 앨범 재킷이 눈길을 끈다. 키보이스·이치현과 벗님들·사랑과 평화 등 1960~80년대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한 1세대 뮤지션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의 일부로, 한국 그룹사운드의 지난 시간을 훑을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무료 공연을 즐길 기회를, 젊은 음악인에게는 꿈을 펼칠 기회를 주는 것도 센터의 미덕이다. ‘두드림뮤직센터’ 카카오톡 채널 추가 후 신청양식을 작성하면 매월 둘째·넷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주말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선착순 100명). 또, 청년 예술인에게는 공연장과 방음 처리된 연습실을 저렴한 가격에 대관, 문턱 낮은 문화 공간이 되기도 한다.

‧ 주소 : 경기도 동두천시 상패로216번길 42

‧ 이용시간 : 월~금요일 09:00~18:00 / 토·일요일 휴무

 

 

◇ 음악의 낭만을 즐기다 ‘가평 음악역1939’

음악역1939는 구 가평역 일대 3만7257㎡ 부지에 자리한 음악 복합문화공간이다. ‘1939’는 가평역이 개장한 해다.

음악역1939는 평화로운 음악 마을을 연상시킨다. 중앙의 뮤직센터를 중심으로 스튜디오·연습실·레지던스 등의 음악 관련 시설, 레스토랑·로컬푸드 매장 등의 편의시설이 알차게 들어서 있다. 공간의 랜드마크는 시선을 사로잡는 대형 콘트라베이스 조형물. 실제 콘트라베이스를 5배 크기로 확대한 10m 높이 조형물은 음악도시 가평을 상징한다. 특히, 이 조형물에는 비밀 하나가 숨어 있다. 저녁 8시부터 밤 10시까지 뮤직센터 벽에 눈부신 미디어 파사드를 보여주는 것.

방문객이 주로 머무는 곳은 실내 공연장, ‘1939 시네마’ 영화관, 북카페 등을 갖춘 뮤직센터다. 공연장에서는 연간 25개의 음악 프로그램이 열리는데,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G-SL(가평 Saturday Live)은 금방 매진이 될 만큼 인기다.

야외공원에는 경춘선 기차 여행을 추억할 수 있도록 ‘시간여행거리 열차’라는 이름으로 실제 운행하던 무궁화호 열차를 전시, 볼거리를 더했다. 전철 개통으로 운행을 멈춘 2010년까지 열차는 춘천으로 향하는 청춘들의 설렘을 싣고 달렸다. 멈춰 선 열차 안에는 경춘선 주제의 책과 시, 1980년대 강변가요제 음반을 진열해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 주소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석봉로 100

‧ 이용시간 : 상시 개방

 

 

◇ 구전 민요를 오선지에 붙들다 ‘평택 지영희국악관’

1909년 평택시 포승읍에서 태어난 ‘국악 천재’ 지영희. 대중에게는 낯설지 모르겠지만, 국악의 대중화·현대화·세계화를 이끈 기념비적 인물이다. 구전 민요 채보(곡조를 듣고 악보로 만듦), 국악관현악단 창단, 한국인 최초 미국 카네기홀 공연 등 선생의 업적은 한 둘이 아니다.

특히, 그중 가장 눈부신 업적은 민요를 오선지에 옮겨 국악의 얼을 집대성한 일이다. 지영희 선생은 자전거를 타고 7년간 전국을 떠돌며 사람들이 부르는 민요를 녹음했다. 그전까지 국악은 악보가 없었고, 국악인들은 스승의 입을 통해서만 가락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흩어지기 쉬운 무형 예술이 계승되려면 기록이 필수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렇게 모은 소리를 밤을 지새우며 오선지에 단단히 잡아뒀다.

그 결과 ‘강강술래’, ‘정선아리랑’, ‘매화타령’ 등 수백곡의 민요를 보존, 온 국민이 흥을 나눌 수 있게 됐다. 비파와 아쟁 같은 국악기를 직접 개량하고 국악 장단을 서양 관현악으로 편곡해 국악 오케스트라를 가능케 한 것도 선생의 공적이다.

평택호관광단지에 자리한 지영희국악관은 현대 국악의 아버지, 지영희의 생애와 업적을 다각도로 소개한다. 161㎡의 아담한 전시관에는 조선 최고 무용수, 최승희와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던 젊은 날부터 하와이에서 눈을 감은 말년까지 그의 드라마틱한 생애가 담겨 있다. 선생이 생전에 사용한 해금과 피리, 태평소, 친필 악보 등 소장품도 가지런하다.

‧ 주소 :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평택호길 147

‧ 이용시간 : 화~일요일 10:00~17:00 / 월요일·명절·명절 전날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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