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취약지역에 대한 장기적인 사업추진방안 마련해야”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주택건설 공급 관리를 통한 서울시민의 주거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해 지방공기업법에 따라 서울시의 100% 출자로 설립된 지방공사다. 1989년 설립 이후 주로 서울시 내 공공택지 등에서 주택건설사업을 시행했고, SH와 서울시 소유의 임대주택 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서울시 내 대규모 택지가 고갈됨에 따라 업무를 다각화, 공공택지 외에서의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공공재개발사업 등을 바탕으로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노력도 이어가고 있다.

SH 재개발기획부 정임항 팀장을 만나 정비사업 관련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정임항 팀장은 재개발, 재건축, 시장정비, 도시개발사업, 민간임대공급 촉진지구사업, 리츠출자를 통한 주택건설, 업무시설 조성 등 20여개 이상 사업장의 사업기획과 신규 사업 참여 등을 결정한 바 있으며, 현재도 일부 사업시행을 맡아 진행 중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정임항 팀장
서울주택도시공사(SH) 정임항 팀장

- 정비사업과 관련된 SH의 역할을 소개한다면.

SH는 정비사업에서 자금조달, 부지확보, 인허가를 통한 건설사업 수행 등 시행자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정비사업조합은 신용과 담보가 없기 때문에 자체적인 자금조달이 어려워 건설업자의 대여 또는 보증 등으로 자금조달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조합은 사업을 독립적으로 꾸려나기가 쉽지 않고, 건설업자는 사업 참여에 대한 부담이 증가해 여러 가지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를 발생시키게 된다.

SH가 시행자로 참여할 때 가장 큰 장점은 이러한 조합방식 정비사업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SH가 자체 자금조달을 통해 온전한 시행자 역할을 수행할 경우 건설업자는 사업 참여의 부담이 줄어 시공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한편, SH 공공재정비처 재개발기획부에서는 부지확보와 인허가를 통한 건설사업 수행업무, 주민 사업의 특성에 따른 주민 동의서 징구, 주민의견 수렴 및 권리관계 조율 등의 업무를 부서단위로 일괄 수행하고 있다.

대규모 택지 내 주택건설사업이 공종·공정별 부서를 나눠 전문·분업화해 수행하는 방식이라면, 정비사업은 도심 내 거주 또는 영업이 이뤄지는 곳에서 개별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인 만큼 도시건축계획과 권리배분 등을 동시에 고려해 주민의 이해설득과 동의를 통한 사업이 진행돼야하기 때문이다.

 

- 정비사업 관련 활동 진행 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시행자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조달이다. 외부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온전한 자체 자금조달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이에 SH의 적극적인 요청을 통해 공공재개발 제도 도입 시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자금조달 방안을 포함시켰으며, 지방공기업법 개정을 통해 지방공사의 업무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주택도시기금 이외의 자금조달 방안을 추가하기도 했다.

자금조달 외에 남은 역할은 주민과의 소통 및 조율과 인허가 등의 사업관리인데, 이를 위해서는 직원들이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공종전체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소통 및 공감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이에 따른 직원들의 부담이 상당한 만큼 최대한 사업진행과정을 시스템화할 수 있도록 기준수립과 제도개선 등에 가장 신경 쓴 것 같다.

특히 ▲정비사업은 현 소유주에게 입체환지를 통해 분양하는 방식인 만큼 품질향상이 중요하다는 점 ▲건설업자 선정방식이 사실상 설계공모 방식이다 보니 건설업자의 설계참여를 적극 허용하고 있다는 점 등을 검토해 건설업자 선정 방식을 개선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건설업자를 시공자에서 공동시행자 지위로 변경, 공종 및 자재 등의 분리발주 등의 문제를 주민친화적으로 해결했으며, 건설업자의 사전설계 참여 허용을 통해 기간단축과 불필요한 설계변경을 최소화하고 공모 시 채택된 디자인으로 시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준을 수립했다.

 

- 기억에 남는 정비사업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정비사업은 주민의 이해관계가 다양하고, 인허가와 관련된 법률과 제도 내용도 어려워 쉽게 넘어갔던 경험이 드물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공공재개발사업 제도정착에 큰 영향을 준 강남아파트 재건축사업이다.

1995년 조합이 설립된 강남아파트 재건축사업은 단독주택과 상가가 구역계에 포함되면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동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실제로 추가 동의를 받지 못해 아파트 외 부지의 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했었다.

또한 재난위험시설임을 감안해 선이주를 진행했으나, 관리처분계획 총회 의결이 무효화되고, 장기간 하자를 치유하지 못해 조합원 재산의 경공매 절차가 진행됐던 현장이었다.

이에 이자비용 등 초기비용은 SH가 부담해 경공매 절차를 중단시키고 공공지원민간임대 연계형 정비사업을 도입해 분양성 문제와 재원조달 문제를 해결했으며, 재난위험시설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 등을 활용해 사업성을 확보하도록 사업추진방안을 마련했다.

인허가 절차도 조합의 협조 속에서 SH와 서울시, 자치구가 TF를 구성해 인허가를 총괄 관리하면서 정비계획 제안부터 사업시행인가, 시공사선정, 조합원분양, 조합설립 동의서 재징구, 관리처분 수립까지 전체 일정을 9개월만에 마무리했다.

당시 여러 사업을 동시에 진행 중이었고, 각종 소송 업무 등 하자 치유 문제와 이러한 하자로 인한 사업의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대내외적으로 사업 참여 및 진행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는 등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었지만 결국 단기간에 사업을 정리했다.

특히 조합으로부터 협상과 동의서 징구에 대한 단독 권한을 직접 부여 받아 사업진행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6개월간 수차례 방문해 동의서를 징구했고, 최종 동의서를 조합으로 건네줬을 때 사업실패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낫다는 안도감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 활동 중에 느낀 제도의 개선점이나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갈등정체구역이나 열악, 취약지역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공공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지역에 대한 장기적인 사업추진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역들은 상권활성화 지역이거나 건축물의 높이가 제한된 지역, 주변시세가 낮은 지역 등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지역 전체가 노후·슬럼화 돼 매매가격과 임대료가 낮아지면 개발동력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구역지정과 해제가 반복돼 사회적인 비용낭비가 더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기반시설이 열악하지만 활성화된 상권이 포함된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의 경우, 대규모 토지와 상가소유자는 청산 시 양도세 부담이, 분양 시 상가 위치배정과 활성화 불확실성 등의 부담이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집합건물에서 토지와 건물만을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토지등소유자에게 분양되는 구분상가는 유동인구와 접근성이 주로 고려돼 일부 상가만 경쟁률이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고, 개별 분양인 만큼 MD계획이나 앵커 테넌트 유치가 어려워 사실상 이에 대한 사전설계의 의미가 없다.

대규모 상가의 이점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가를 소유하고 운영·관리하는 주체를 단일화해 설계 시부터 사전 참여하는 것이 유리한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가 일부 지분(부동산투지회사의 자금 등)을 토지등소유자 분양대상으로 확대한다면 과세이연을 통해 양도세 부담을 없앰과 동시에 전체 상가의 일괄 계획이 가능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지분에 대한 분양 대상 확대 시 일반적인 부동산과 달리 거래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일원화된 플랫폼이 개발되거나, 기존 플랫폼 등을 연계 활용할 수 있는 체계도 동시에 갖춰져야 할 것이다.

한편, 민간이 자체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높이제한 지역이나 주변시세가 낮은 지역의 개발의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합개발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구성원과 이해관계 등 사업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입지나 사업성이 좋은 쪽에서 동의를 얻기가 힘들고, 시행자가 이원화될 경우 오히려 진행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탓에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악‧취약지역 개발사업에 공공시행자가 참여하는 대신 수익이 발생하는 지역들도 참여해 교차보전을 하거나, 별도의 수익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사업성뿐만 아니라 도시계획과 주변 환경까지 고려하는 열악‧취약지역의 개발 모델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서울의 아파트 인허가 물량이 5~6만호 수준인데, 작년 공공부분의 인허가 물량이 아파트를 포함해 전체 3000호인 점을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아파트 공급은 정비사업을 통해 이뤄진다고 봐야할 것이다.

SH는 현재 공공재개발 사업장 14곳을 선정해 진행하고 있다. 사업 진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수도 많고 부침도 겪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이 될 수 있도록 묵묵히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서울시의 주택시장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이자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향후 5~10년간은 공공재개발과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이 주택공급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는 서울의 30년 이상 노후 단지가 900여개, 세대수는 35만호(20년 이상은 2200여개 단지, 90만호)에 달할 예정인 점을 고려할 때, 재건축사업의 형태가 주택공급을 담당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 각 구역 추진위원장․조합장, 토지등소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민을 대표하는 자리는 막중한 책임감과 업무 부담을 느끼는 자리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려운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대표하는 자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주민과의 소통 및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주민과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면 추진동력을 잃게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토지등소유자들 또한 대표들이 하는 일에 불만과 의문을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주민을 대표하는 자리는 희생과 봉사정신 없이는 맡을 수 없다는 부분도 분명히 이해해주길 당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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