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시정비협회 이승민 회장 / (주)오엔랜드21 대표이사

법무법인 산하 이재현 수석변호사
법무법인 산하 이재현 수석변호사

지난 2003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개발․재건축사업은 사실상 시공을 맡은 건설회사가 주도해왔었습니다. 관련 법률도 도시재개발법, 주택건설촉진법,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으로 흩어져 있어 효율적인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사업추진과정에서 각종 비리와 분쟁이 수시로 발생했고, 전문브로커들이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각종 위법행위가 빈발해 사회적 비난과 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도시정비법이었습니다. 도시정비법은 시공자의 위치를 단순도급자로 축소하고, 그 대신 정비사업전문관리제도를 도입해 조합의 비전문성을 보완하는 한편, 효율적인 사업추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비사업전문관리제도가 도입된 지 어느덧 20년. 하지만 아쉽게도 정비사업 현실은 도시정비법 제정 이전과 달라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특히,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은 법제화만 됐을 뿐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악화된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책임과 벌칙은 늘어난 반면 전문화와 활성화를 위한 뒷받침은 전혀 없었고, 업체 난립으로 인해 용역비는 컨설팅사 시절보다 더 낮아졌습니다. 한마디로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때 500곳을 상회했던 정비회사는 이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이 중에서도 제대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많은 정비회사들이 경영악화 등으로 인해 폐업이나 업종변경을 하는 와중에도 신규진입을 타진하는 곳들도 꾸준히 있습니다.

물론 부실업체들이 퇴출되고, 신생업체가 시장진입을 하는 것은 모든 업종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비사업전문관리업계의 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경영난은 어떻게든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인력 부족’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불합리한 정비회사 등록기준

현재 정비회사는 자본금 10억원(법인인 경우 5억원) 이상으로서 다른 직무를 겸하지 않는 5인 이상의 상근인력을 갖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비회사가 관계 법령에 따른 감정평가법인ㆍ회계법인 또는 법무법인 등과 정비사업의 공동수행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3명만 확보해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협약 외에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인력의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일단 현행법에서는 ‘1)건축사 또는 도시계획 및 건축분야 기술사, 특급기술인으로서 특급기술인의 자격을 갖춘 후 건축 및 도시계획 관련 업무에 3년 이상 종사한 자 2)감정평가사ㆍ공인회계사 또는 변호사 3)법무사 또는 세무사 4)공인중개사ㆍ행정사, 도시계획ㆍ건축ㆍ부동산ㆍ감정평가 등 정비사업 관련 분야의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 5)2003년 7월 1일 당시 관계 법률에 따라 재개발사업 또는 재건축사업의 시행을 목적으로 하는 토지등소유자, 조합 또는 기존의 추진위원회와 민사계약을 해 정비사업을 위탁받거나 자문을 한 업체에 근무한 사람으로서 법 제102조 제1항 제2호부터 제6호까지의 업무를 수행한 실적이 국토교통부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확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인력기준에서 실제 정비사업에 필요한 인력은 5)입니다. 현업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정비사업 전문가의 자격을 갖춘 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5)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2003년 7월 1일 당시’라는 부분입니다. 도시정비법 제정 당시 시점에서는 이 부분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법이 제정된 지 이미 20년이 지났음에도 2003년 7월 1일이라는 시점에 변화가 없어 신규 기술인력이 생겨날 여지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신규 기술인력은 배출되지 않는데 이런저런 사유로 기존 기술인력이 그만두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당장 인력확보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인가권자로부터 영업정지 등의 벌칙을 받는 정비회사의 상당부분이 바로 인력기준 미충족입니다. 정비회사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는 시점에서 기술인력이 그만둘 경우 신규 기술인력을 제때에 확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03년 7월 1일 당시’라는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반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이 기술인력을 아무리 많이 확보하더라도 ‘2명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2명으로 본다’는 조항이 또 발목을 잡습니다. 5인의 상근인력을 두라고 하면서 정비사업에 진짜 필요한 전문인력은 2명까지만 인정하겠다는 것은 현장에서 활동해온 정비사업 전문가들을 전문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비회사에 대한 인력기준은 정비사업보다 용역 규모가 큰 주택건설사업이나 부동산개발업의 등록기준 보다 더 엄격한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실제로 주택건설사업자 등록을 위해서는 건축 분야 기술자 1명 이상, 대지조성사업의 경우 토목 분야 기술자 1명 이상의 전문인력만 확보하면 됩니다. 부동산개발업의 경우도 일단 확보해야하는 상근 전문인력 자체가 2명에 불과합니다. 유독 정비사업전문관리업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올해는 긍정적 변화 기대

지난 2010년 국토교통부(당시 국토해양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은 한국도시정비협회는 그동안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의 전문화와 정비사업의 건전한 육성발전을 도모하며,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국민 삶의 질 향상과 공익에 이바지한다’는 설립목적 실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이 노력의 일환으로 정비사업 관련 제도의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개선안’을 정책당국 등에 개진해왔습니다.

비록 아쉽게도 지금까지는 협회의 제도개선안이 반영된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출범한 제2기 임원진은 그동안 꾸준히 정책당국과의 접점을 넓히며 개선요구를 해왔고, 다행스럽게도 규제일변도였던 지난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정비사업 부분에 존재하는 불필요한 규제 등을 대폭 해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협회가 꾸준히 제기해왔던 여러 제도개선안이 단기간에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정비사업전문관리업 등록기준 개선 등 몇몇 개선요구에 대해서는 정책당국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겨울 혹한을 이겨낸 씨앗만이 봄에 파릇한 싹을 틔웁니다. 어려운 경제 환경에 각종 규제로 침체된 정비사업. 그러나 지금의 고통이 곧 내일의 희망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회원 여러분들이 꿈꾸는 모든 것이 이뤄지는 기쁘고 희망찬 내일이 될 수 있도록 한국도시정비협회가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위의 글은 한국도시정비협회가 발행하는 신문인 「도시정비」에 게재되고 있는 협회 광고의 문구입니다. 앞으로도 한국도시정비협회는 전국의 정비회사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에 회원사를 비롯한 모든 정비회사 임직원들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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