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산연 “정책 실패 근본적 원인은 도시재생에 대한 잘못된 이해”

우리나라 도시재생사업은 초기화 수준의 근본적인 재구조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2013년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은 올해로 시행 10년이 됐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국정과제로 추진되며 공적 자원이 대거 투입됐으나, “벽화만 그리다 끝난다”는 오명 들을 만큼 사업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일부지역에서는 ‘도시재생해제연대’를 결성하고 ‘도시재생 OUT, 재개발 OK’라는 현수막을 써 붙일 만큼 도시재생에 대한 거부감이 큰 상황이다.

그러나 지방소멸, 균형발전 등 여전히 국가적으로 도시재생 정책이 필요한 만큼 지난 10년간의 ‘1세대 도시재생’을 심도 있게 고찰해 보고,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2세대 도시재생’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 1세대 도시재생사업의 한계

이러한 상황 속에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은 1월 19일 ‘Reset 대한민국 도시재생 : 지난 10년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시재생 정책 방향 탐색’ 보고서를 통해 1세대 도시재생사업의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고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건산연은 1세대 도시재생사업의 한계로 ▲정책 효과성 부족 ▲공공재원 투입 종료 후 지속성 부족 ▲민간부문(기업, 주민)의 참여 및 투자 부족 등을 꼽았다.

건산연은 특히, 가장 큰 한계로 정책의 효과성 부족으로 꼽았다. 투입한 경제적·행정적 자원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당초 목표로 했던 쇠퇴하는 도시를 충분히 활성화했는지, 주거환경을 충분히 개선해 왔는지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후·낙후 주거지역의 경우, 도시재생사업이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도로확충, 주차장 개설, 쓰레기 문제해결 등에 충분하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러한 불만은 도시재생사업이 종료되고 나서 최근 재개발사업을 재추진하고 있는 지역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대다수 지역에서 재정지원이 종료됨에 따라 도시재생의 동력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으며, 거점으로 조성된 공간 상당수가 사업종료 후 관리비 부담, 불충분한 수익성, 관리주체 부재 등의 이유로 방치되거나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교통부는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유도해 마중물사업 종료 후에도 도시재생의 지속성을 확보하고, ‘주민 주도의 지역재생’이 진행되도록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건산연이 실시한 현장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모든 응답자들이 근무한 현장에서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도시재생 보조금 공모에 선정돼 사업이 시작되고 난 후 공공에 의해 정부 가이드라인에 맞춰 매우 형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회적경제 조직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부가 기대하는 정책효과는 달성되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정부는 도시재생사업의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역량 있는 주민을 육성’하고 ‘참여하는 주민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이를 실현하고 지원하기 위해 ‘주민협의체’, ‘사업추진협의회’, ‘도시재생지원센터’ 등의 조직을 구성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사업 초기에 주민들의 관심이 반짝 높았다가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고, 나중에는 10명 이내의 주민들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건물주, 지역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도시재생 단위사업과 관련해서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참여자들의 구성이 편중돼 있는 만큼 ‘공공선’을 추구한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저조한 상황 속에서 공동체 관련 정책효과 또한 의문인 실정이다.

 

◇ 도시재생사업 실패 원인과 성과는?

건산연은 이러한 실망스러운 사업 결과의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 원인으로 ‘도시재생에 대한 개념 및 정책목표 혼란’을 꼽았다. 정책 컨트롤타워인 중앙정부부터 현장까지 ‘재생은 재개발이 아니다’, ‘도시재생은 선진국에서 적용하는 착한 방식, 재개발은 후진국형 나쁜 방식’ 등 도시재생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널리 퍼져있었고, 이에 따라 1세대 도시재생은 근본부터 어긋나버렸다는 것.

이외에도 건산연은 실망스러운 사업 결과의 주요 원인으로 ▲도시재생 전략 및 접근방식의 문제 ▲도시 활성화에 기여하기 힘든 단위사업 구성 등 잘못된 사업내용 ▲공공성과 수익성, 공공과 민간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이해 ▲현실성이 부족한 주민참여 및 공동체 관련 제도 설계 등을 꼽았다.

한편, 건산연은 여러 한계를 가진 1세대 도시재생의 주요 성과와 의미로 ▲구도심과 역사문화자원의 중요성 환기 및 일부 지역 지역경제 활성화 토대 마련 ▲시행착오의 경험 ▲향후 도시재생 사업추진을 위한 제도적 바탕 마련 등을 꼽았다.

특히, 정책효과에 대해서는 상당한 비판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도시재생은 특별법 제정 및 사업 촉진을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 조항 및 새로운 사업수단 신설, 주택도시기금에서의 도시계정 설치 및 도시재생 지원상품 개발 등의 제도화를 통해 향후 새로운 도시재생 정책 및 사업 시행을 위한 제도적 바탕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는 것이 건산연의 설명이다.

건산연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현 도시재생사업에서의 주민참여 제도설계와 현장에서의 참여방식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으나, 민주주의가 심화·발전되고 있는 가운데 정책 과정에 시민사회의 참여 공간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시민(주민)참여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서 “과거 도시화와 인구가 팽창하던 시기에 주택, 상업, 산업용지 수요를 충족시키고 지역 세수 확대를 위해 손쉬운 방법으로 활용되던 신시가지 개발 중심의 도시공간 정책에서, 구도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구도심 개선으로 정책적 관심과 무게추를 어느 정도 옮겨온 것 또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도시재생사업 성공 위해선 …

건산연은 2세대 도시재생을 위한 개선 방향으로 ▲도시재생 개념 및 정책목표 재정립 ▲공공과 민간의 역할 재정립 ▲물리적 환경개선 ▲도시공간 계획체계 재구조화 ▲실효성 있고 현실에 기반한 민간참여 제도설계 등 5가지를 제시했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도시재생 정책의 본질적인 목적은 ‘쇠퇴도시 활성화’이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는 보존형 방식과 전면철거형 방식을 포함한다. 1세대 도시재생에서는 목적과 수단이 전도돼 대상지 상황에 맞게 유연한 사업 수단을 적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경직된 이해로 인해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 중 사업성이 양호해 전면재개발이 가능한 곳에서도 집수리, 골목길 정비 등의 방식이 적용됐고, 그 결과 주민들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또 “19세기 중반 오스만 시장이 파리 대개조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프랑스 수도 파리는 폭 2m 내외의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가득 찬, 햇빛이 거의 들지 않고 상하수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며 전염병이 수시로 창궐하는 도시였다”면서 “만일 파리가 한국의 1세대 도시재생사업처럼 집수리, 골목길 정비 중심으로 물리적 환경을 개선했다면 지금과 같이 ‘빛의 도시 파리’, ‘낭만과 아름다움의 도시 파리’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지금과 같이 공공 혼자, 공공성만 중시해서, 공공재원만 가지고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은 사업 규모, 지속성, 파급효과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영국 도시재생 사례와 같이 민간이 더 잘하거나 민간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기획부터 실행까지 민간을 더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공공지원 방식도 지금과 같이 ‘일단 공공이 선투자하고 민간투자가 뒤따르기를 막연하게 기다리는 방식’이 아닌, 민간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도록 공공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필요시 더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산연은 우리나라 도시정책의 엇박자도 지적하고 있다. 구도심에서는 ‘재생사업’이, 옆 동네에서는 ‘정비사업’이, 시 외곽에서는 ‘신시가지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등 도시 전체적인 ‘큰 그림’ 없이 사업이 혼재돼있고, 구도심 쇠퇴를 가속할 수 있는 행정기관 및 교통거점의 시 외곽 이전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곳이 많다는 것.

이에 대해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도시공간 계획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건산연의 주장이다.

또한 건산연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낙관과 관념에 바탕을 두고 설계된 주민참여 및 공동체 관련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실효성 있고 현실에 기반한 민간참여 제도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민간참여에서 참여 대상을 주민이나 비영리부문에만 치중하거나,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가정에만 바탕을 두고 민간참여 제도설계를 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면서 “▲민간참여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는 점 ▲민간참여는 장점과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하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성공과 실패 사례를 비판적으로 고찰해 한국의 제도적·사회적·문화적 환경 및 개별 사안에 적합한 민간참여 방식을 고안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도시정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