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계약 전부가 일체로서 하나의 계약인지 살펴야”

“시공자 선정결의가 무효가 됨에 따라 공사도급계약 또한 무효가 됐다고 하더라도 해당 공사도급계약에 포함된 소비대차계약까지 무조건 무효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건설사가 추진위원회 임원을 상대로 대여금 반환을 구하는 소송(2019다232277)에서 위와 같은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사정은 이렇다. 서울 관악구 소재 A재개발 추진위원회(2004년 6월 25일 승인)는 2006년 7월 25일 주민총회를 개최해 B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하는 결의를 했으며, 동년 9월 26일 B건설사와 이 사건 정비사업에 관한 공사도급(가)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공사도급계약 일반조건 제15조는 ‘B건설사가 A추진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정비사업의 시행을 위해 소요되는 자금을 대여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A추진위원회 일부 임원들은 공사도급계약에 따른 이 사건 추진위원회의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이후 B건설사는 2006년 11월 24일부터 2010년 7월 15일까지 소비대차약정에 따라 추진위원회에 수차례에 걸쳐 합계 34억5093만7380원을 대여했다. 더불어 추진위원회는 그중 일부 대여금에 대해 다시 B건설사와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B건설사에게 공정증서를 작성해 줬으며 임원 중 일부는 이에 따른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한편, A구역 내 토지등소유자가 추진위원회를 상대로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해 2010년 11월경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서울고등법원 2010나46574)과 판결(서울고등법원 2010나49757)이 각각 확정됐다.

그러자 B건설사는 A추진위원회와 체결한 공사도급(가)계약의 소비대차약정 및 개별 소비대차계약을 법률원인으로 해 추진위원회 및 그 연대보증인들을 상대로 대여금반환을 구하는 위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인 이상 이를 전제로 하는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도 무효라는 점에 대해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면서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은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 내에 포함됐고, B건설사와 A추진위원회가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을 공사도급계약과 별개로 체결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 역시 무효라고 봐야 한다”며 “연대보증한 추진위원회 임원들은 B건설사에 대한 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이와 달랐다.

해당 사안과 관련해 대법원 제1부는 먼저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무효로 하나, 그 무효 부분이 없더라도 법률행위를 했을 것이라고 인정될 때에는 나머지 부분은 무효가 되지 않는다(민법 제137조)”면서 “여기서 당사자의 의사는 법률행위의 일부가 무효임을 법률행위 당시에 알았다면 의욕했을 가정적 효과의사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와 같은 법률행위의 일부무효 법리는 여러 개의 계약이 체결된 경우 그 계약 전부가 경제적, 사실적으로 일체로서 행해져서 하나의 계약인 것과 같은 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이때 그 계약 전부가 일체로서 하나의 계약인 것과 같은 관계에 있는 것인지의 여부는 계약 체결의 경위와 목적 및 당사자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B건설사와 A추진위원회는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뤄진 시공사 선정결의의 법적 효력이 분명하지 않아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했고, 거기에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도 포함시켰으며 이에 기초해 그 무렵부터 2010년 7월 15일경까지 수차례에 걸쳐 금전 대여관계를 맺어 온 점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뤄진 시공사 선정결의가 무효라고 하더라도 조합 설립 후 총회에서 추진위원회가 한 시공사 선정을 추인하는 결의를 할 수 있고, 이러한 결의로 추진위원회가 한 시공사 선정은 유효하게 되는데, 이 사건에서도 B건설사와 A추진위원회는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장차 조합이 설립되면 조합 총회 결의를 통해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이뤄진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나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유효로 될 수 있다는 사정을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는 점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체결된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가 될 것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B건설사와 A추진위원회가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에 따라 자금 대여관계를 유지했다는 의사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점 ▲더욱이 B건설사는 이 사건 시공사 선정결의에 관해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가 계속 중인 2010년 7월 15일까지도 지속적으로 A추진위원회에 금전을 대여하고 일부 대여금에 대해서는 추가로 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를 작성받기도 한 점 ▲위 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에는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의 해약이 기한의 이익 상실에 따른 이행기 도래 사유로 정해져 있을 뿐인 점 등을 지적하고 “이러한 사정에 비춰보면, B건설사와 A추진위원회는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과 소비대차약정을 체결할 당시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을 체결,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사정이 이렇다면 원심으로서는 B건설사와 A추진위원회에게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을 체결, 유지할 의사가 인정될 수 있는지 등을 심리해 이 사건 소비대차약정의 유효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러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이 사건 공사도급계약에 소비대차약정이 포함돼 체결됐다는 사정 및 이 사건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과 소비대차약정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공사도급계약과 함께 소비대차약정도 무효가 된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일부 무효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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