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윤강 허제량 대표변호사 / 한국도시정비협회 자문위원

법무법인 윤강 허제량 대표변호사 / 한국도시정비협회 자문위원
법무법인 윤강 허제량 대표변호사 / 한국도시정비협회 자문위원

정비사업 관련 실무에서 여러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재미있는 자문 요청을 받게 되는데, 아래에서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내지 전문가들의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관할관청이나 조합 또는 추진위원회 입장에서 의문을 가질 만도 한 부분이다.

가로주택정비사업 추진을 위한 주민협의회의 대표자 A가 조합설립을 위해 22년 하반기 토지등소유자에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하고 2022년 12월 13일에 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한 후, 2022년 12월 22일에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는데, 조합설립인가 요건의 일부 미비로 인한 보완 중, 위 창립총회에서 당선된 대표자 B(조합장)가 “기존 사업계획안을 변경해 조합설립인가를 다시 신청하겠다”며, 조합원들 대다수의 동의를 받아 기존의 조합설립인가 신청 건의 취하를 요청한 사안이다.

그런데 위 사안에서 일부 조합원들은 “그동안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하고 또 신청서를 제출한 자는 대표자 A이므로, A가 조합설립인가 신청자의 지위에서 직접 신청 취하를 해야 한다”며 대표자 B가 함부로 기존의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소송은 소송을 제기한 자가 취하해야 하고, 민원 신청 역시 직접 민원을 제기한 자가 취하하는 것이 원칙이며 상식적이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하 소규모주택정비법) 제23조 제1항에 따르면, 가로주택정비사업의 토지등소유자는 조합을 설립하려는 경우 토지등소유자의 8/10 이상 및 토지면적의 2/3 이상의 토지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시장 등으로부터 인가받아야 하므로, 소규모주택정비법에서는 조합설립인가 신청 권한이 마치 토지등소유자 ‘개개인’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게끔 규정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참고로 이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서는 승인된 ‘추진위원회’가 주체가 돼 조합설립 인가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과는 다소 다르다(소규모주택정비법에서는 승인된 추진위원회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함).

그러나 도시정비법 시행규칙 내 조합설립 인가신청 서식과 소규모주택정비법 시행규칙 조합설립 인가신청 서식을 살펴보면, 조합설립 인가신청의 신청인 대표는 창립총회에서 선출된 정당한 대표자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즉, 위 서식에는 창립총회를 통해 정해진 조합명칭과 그 대표자의 성명 및 주소를 기재하도록 돼 있다. 특히, 조합설립을 위한 창립총회의 성격은 ‘조합의 총회’가 아니라, ‘토지등소유자의 총회’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2. 4. 12. 선고 2010다10986 판결 등)인 바, 이 점으로 보더라도 창립총회를 통해 당선된 대표자가 조합설립 전 단체를 대표해 조합설립 인가신청을 할 사람이라는 점이 명확하고,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조합설립동의서를 징구할 당시의 대표자가 위 서식상 ‘신청인 대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안에서 조합설립동의서 징구 및 조합설립 인가신청서는 기존에 주민협의회의 대표자였던 A가 했을지 모르나, 기본적으로 그는 창립총회 시점 이후부터 대표자의 지위를 상실했고, 새로운 대표자 B가 선출됐으므로, 조합설립 인가신청시점의 정당한 대표자는 B가 되는 것이며, 기존의 신청은 오히려 법적 하자가 있게 된다.

나아가 기본적으로 법상 창립총회 회의록 역시 조합설립 인가신청 시 제출해야 할 서류 목록 중 하나로 정해져 있으므로, 이를 검토하는 관할관청 측에서는 응당 조합설립 인가신청이 잘못됐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 사안에서는 일부 조합원들이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까지 들먹이며 신청인 대표자로 기재된 자의 조합설립 인가신청서를 새로이 선출된 대표자가 함부로 취하할 수 없다는 등 강력히 주장하면서, 조합 내부에 일부 혼선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는 일부 조합원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었다. 즉, 조합설립동의서의 징구 및 조합설립 인가신청을 대표자 A가 했다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그가 창립총회에서 정당한 대표자로 선출되지 못한 점을 간과하고, 조합설립인가 신청서에 신청인 대표가 잘못 기재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신청인 대표가 잘못 기재됐으니 이 부분이 보완돼야 할 것이고, 정당한 대표자인 B가 다수의 조합원들의 견해를 물어 기존의 인가신청을 취하하는 것에는 하등의 문제가 없는 사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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