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살 깎아먹기식 저가 출혈경쟁 근절돼야

- 가격보다 ‘실력’으로 투명하게 경쟁해야 상생

 

경제가 발달할수록 사회 각 분야에서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게 되고, 각 기업들은 보다 더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각 기업들은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상품, 더 좋은 상품,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한다. 이것이 기업간 경쟁이다.

기업들은 경쟁을 통해 더 발전하게 되고, 이러한 경쟁은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이익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 만족하게 되는 ‘윈-윈’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간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면 기업에 손해를 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도 불이익으로 돌아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적정 수준의 경쟁을 벗어나게 될 때는 모두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정비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정비사업은 노후․불량한 주택을 철거하고 그 대지 위에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주거환경정비수단으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택지가 고갈된 대도시에서 신규 주택공급 수단으로 널리 활용돼 왔다. 그러나 정비사업은 추진과정에서 사업 참여주체 간에 갈등이 많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게 돼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정비사업은 다수의 조합원이 권리자로 공동 참여하며, 이들 조합원으로 구성되는 정비사업조합에 시공회사․설계회사․행정관청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조합원은 개발이익의 극대화, 조합은 사업의 원활한 진행과 사업기간의 단축, 행정관청은 제반 계획 및 지역균형개발의 달성, 시공회사 등은 기업이익의 극대화 등 사업 참여주체들은 서로 상충되는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되는 갈등은 관련 주체들이 강조하는 주장의 합리성과 공평성을 고려해 조정하고, 합의해 해소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해관계가 원만하게 협의 또는 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 조정이 되지 않으면 결국 분쟁이 발생해 사업이 지연되거나 사업자체를 불가능하게 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게 한다.

 

∥ 정비사업전문관리업 퇴보시킨 ‘저가경쟁’

정비사업의 복잡한 사업추진 절차, 관련 당사자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 사업의 사회․경제적 파급효과 등을 감안할 때, 전문성이 없는 주민으로 이뤄진 조합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정비사업 분쟁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제도는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2003년 7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 제정·시행되면서 도입됐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도시정비법 시행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은 ‘법제화’ 당시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발전보다는 정체 내지 퇴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정비법 시행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정비회사들은 흔히 ‘컨설팅사’라고 불렸다. 그 숫자도 많지 않았고, 재건축·재개발 활황기에 힘입어 성장세를 지속했다. 하지만, 정비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정비사업 관리업을 양성화하기 위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으로 법제화 하면서 오히려 시장 환경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블루오션’이었던 시장은 업체의 난립과 이로 인한 저가 출혈경쟁이 만연하면서 각종 부작용을 낳게 됐다.

정비사업을 효율적이고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해 제정됐던 도시정비법은 정비사업 규제법으로 전락했고, 정비회사들은 규제로 인한 시장악화에 과도한 경쟁이 겹치면서 만성적이고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됐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이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가혹할 정도로 계속된 규제라는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와 함께 정비회사들의 과당경쟁이 한 원인이 됐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정비회사들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비사업 규제개선 노력과 함께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합리적 경쟁, 선의의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도록 업계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에서도 그렇지만 기업들 역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굴지의 기업들조차 ‘경쟁력 강화’를 부르짖는 것 역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경쟁력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품을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여타 제조업과 달리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은 정비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노하우’를 제공하는 컨설팅업이다. 도시정비법 제정 이전에 컨설팅사라고 불리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컨설팅은 ‘어떤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고객을 상대로 상세하게 상담하고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정비회사는 전문성이 없거나 부족한 조합(추진위원회)에게 정비사업에 대한 전문적인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이고, 정비회사의 임직원들은 ‘지식노동자’인 컨설턴트가 된다. 컨설팅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정비회사의 특성상 ‘용역비’의 대부분이 인건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비회사들의 용역비는 도시정비법 이전 수준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정비회사들이 책임져야 하는 부담(사업비 대여, 용역비 회수 시점의 지연 등)이 늘어났음에도 용역대가는 16년 전의 수준보다 못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도시정비법 이전부터 정비회사를 운영했던 A대표는 “도시정비법 제정 이후 정비회사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저가 출혈경쟁을 펼친 것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신생업체인 B사가 시장가격에 현저히 못 미치는 가격으로 대형 사업장의 수주에 성공하면서 덤핑경쟁이 불가피해졌고, 결국 지금까지 용역비 현실화를 이루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면서 “발주처인 조합에서 조합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비회사의 능력보다 가격 중심으로 회사를 선정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덤핑경쟁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가격 중심으로 정비회사를 선정하고 있다.

정비사업은 사업장의 규모와 상관없이 정비회사가 제공하는 컨설팅의 난이도 편차는 크지 않다. 정비사업 절차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정비법 이전에도 사업장 규모가 크면 면적당 용역비 기준이 낮았고, 작은 사업장은 높았다. 당연한 시장원리가 적용됐던 것. 지금도 대형사업장의 경우 면적당 용역비가 작은 사업장보다 낮게 책정된다. 문제는 이 용역비 자체가 거의 20년 전 수준보다 못하다는 데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정비사업의 평당 용역비는 3만원~5만원 사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의 현장에서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용역비가 결정된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인건비조차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정비회사들의 수익이 낮아지니 컨설턴트인 임직원들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을 제공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임직원들의 이직이 잦아지고, 신규 인력은 유입되지 않게 됐다. 그리고 이는 조합에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고, 정비회사들의 위상을 스스로 깎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 한국도시정비협회 “녹색생태계 조성 위해 전력”

문제는 또 있다. 덤핑으로 수주한 업체는 적정 이익을 보전받기 위해 부정과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정비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 사건에 정비회사 임직원들이 연루되는 일이 있고, 이것이 정비회사에 대한 사회적 폄하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도시정비협회 이승민 회장은 “현재 중앙부처 등 공공에서는 정비사업과 정비회사를 적폐라고까지 인식하고 있다. 20년 이상 정비회사를 운영해온 사람으로서 이런 인식을 접할 때마다 허탈감에 빠지곤 하는데, 협회장이 된 지금은 허탈감을 애써 지우고 정비회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협회가 앞장서서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우리 정비회사 스스로도 일부의 그릇된 수주관행을 철폐하는 한편,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극히 소수의 업체는 퇴출될 수 있도록 자정하고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비사업 시장에서 모두가 공감하고 신뢰하는 ‘녹색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정비회사들은 서로가 극복하고 넘어서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발전을 위해 상생하는 ‘라이벌’이다. 각각의 정비회사가 서로에게 선의의 라이벌이 될 때 경쟁력이 강화되고 전문회사로서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게 된다.

정비사업의 녹색생태계 조성은 정비회사들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토대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는 누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을 내딛을 때 시작된다. 모든 정비회사가 정비사업전문관리업의 위상에 걸맞은 위치를 찾는 그 날까지, 한국도시정비협회는 회원사와 함께 녹색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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