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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듣는 노래대구 ‘김광석길’에서 그를 다시 부르다
RE magazine | 승인 2014.05.31

한하늘 / 자유기고가

 

살다보면 그 이름만으로도 아련해지는 사람이 있다. 내게 있어 김광석이 그렇다.

내가 김광석을 처음 만난 것은 휴학을 한 후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1988년 봄 즈음이었다. ‘들국화’와 ‘이문세’를 즐겨듣던 때에 만난 김광석은 ‘동물원’이란 그룹의 보컬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거리에서’를 들으면서 이내 김광석의 음색에 매료됐다. 깊은 슬픔을 품고 있는, 하지만 그 슬픔이 너무 깊어, 오히려 슬픔보다는 그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주는 그의 음색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노래 ‘거리에서’는 내 노래방 애창곡 ‘1호’가 됐었다.

물론 돌이켜보면 동물원 이전의 김광석도 알고 있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1980년대 노래운동을 선도하던 노래운동패였고, 당시 대학가에서 ‘노찾사’ 노래는 ‘운동가요’의 정점으로서 수많은 학생들이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불러댔었다. 그리고 김광석은 이 ‘노찾사’의 멤버였다. 하지만, 여럿으로 구성된 ‘노찾사’의 특성상 김광석만을 따로 떼어 기억할 수 없었기에 ‘동물원’의 보컬로 만난 김광석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김광석이 부른 모든 노래는 ‘명곡’이다. 노래 자체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김광석이 불렀기에 명곡이 됐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르는 ‘거리에서’나 ‘서른 즈음에’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김광석의 노래는 오로지 김광석이 불렀을 때 가슴을 파고들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그가 떠난 지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가슴으로 부르고 있는 것일 게다.

얼마 전, 볼 일이 있어 대구에 가게 됐다. KTX를 타고 아침에 갔다 오후에 돌아오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었다. 대구로 가는 기차 안에서 휴대폰에 저장된 노래를 듣노라니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흘러나온다. 불현듯 대구에 ‘김광석 길’이 있음이 떠올랐고, 그때부터 가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사전점검은 사라진 채 그 길에 가고 싶다는 욕심만 커져갔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 볼 일을 마친 뒤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의 차를 타고 김광석 길로 향했다. 가는 동안 내내 김광석 길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김광석 길은 이미 대구의 명소로 꼽히고 있었다. 하기야 김광석을 추억하는 이가 어디 나뿐이랴. 더구나 조성된 지 이미 5년이나 되어 ‘서울 촌놈’인 나조차 알게 됐으니 말해 무엇하랴.

“저기 동상 보이지요?”라는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교차로 모퉁이에 그가 기타를 치며 앉아있다.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꾼처럼, 그의 옆에 앉아 어색하게 사진을 찍었다. 옆에서 자분거리는 그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김광석 길은 그의 동상 옆의 300여 미터에 불과한 짧고 좁은 골목길이었다. 그 좁은 골목길에 온통 그의 그림과 노래가 빼곡하니 채워져 있다. 금요일 오후라서인지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김광석이 하늘로 간 후에나 태어났을 어린 소녀 둘이 사진을 찍으며 도란거린다. 그들에게 김광석을 추억할 무엇이 있으랴. 그럼에도 기꺼이 그를 찾아 이 좁은 골목길을 거니는 모습에 괜히 짠해진다.

김광석 길은 1964년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김광석을 테마로 2010년 조성한 문화거리이자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우범지대를 되살린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 예술인과 인근 전통시장 상인들이 힘을 모으면서 탄생한 것이 김광석 길이다. 상인과 예술인들이 죽어가는 방천시장과 우범지대로 변한 시장 주변 거리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다가 김광석을 떠올린 것이다. 화가와 조각가 등 20여 명이 김광석이 태어난 주택가 골목을 벽화거리로 꾸민 것이 김광석 길의 시초이며, 최근에는 그 일대에 작업실과 갤러리, 공연장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새로운 창작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말이면 대구뿐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일부러 김광석 길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하지만, 쇠락한 지역을 짧고 좁은 골목길만으로 되살리기는 역부족인 듯, 곳곳에 ‘임대’ 벽보가 붙어있다. 문화와 도시재생이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에서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기차시간에 쫓겨 서둘러 김광석 길을 돌아 나오며 자꾸 뒤를 돌아본다. 그가 어여 가라는 듯, 혹은 갔다가 다시 오라는 듯 어색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다. 나보다 2년 먼저 태어났으나(그와 나는 생일이 같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인연인가!) 나보다 훨씬 먼저 세상을 떠난 그를 추억하며, 돌아오는 내내 김광석의 노래를 가슴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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