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브랜드란 소의 등이나 양의 귀에 소유자를 상징하는 표시를 낙인찍는 것에서 유래했다. 즉, 가축의 소유자 그들의 가축에 자기의 소유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 신용이나 판매를 위한 기능보다는 주로 타인의 소유물과 자기 소유물을 구별하기 위한 식별기능으로 사용됐었다.

이후 브랜드의 역할은 주로 상품의 식별표시였으나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점차 품질을 보증하는 기능으로 발전됐으며, 기업의 제품 또는 서비스 및 이미지를 고객에게 명확하게 인식시켜 경쟁자로부터 차별화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사회는 브랜드사회이다. 넘쳐나는 브랜드 홍수 속에서, 우리는 브랜드를 입고, 먹고, 향유한다. 제품경쟁시대에서 인식경쟁시대로 바뀌면서 브랜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아파트 또한 이미 브랜드시대로 접어든지 오래이다.

본격적인 국내 아파트 브랜드시대의 개막은 2000년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과 삼성물산의 ‘래미안’이 론칭되면서 열렸다. 대림산업이 용인시에서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e-편한세상’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달았으며, 2001년 10월 입주했다. 반면 삼성은 업계 최초로 ‘래미안’이라는 아파트 브랜드(BI) 선포식을 열었고, 수원시에서 2002년 4월 수원시에 최초의 ‘래미안’ 아파트가 입주했다. 업계에서는 ‘e-편한세상’과 ‘래미안’이 본격적인 아파트 브랜드 경쟁시대를 열었다고 보고 있다.

‘원조’ 자리를 놓고 ‘e-편한세상’과 ‘래미안’이 아웅다웅하지만, 그 이전이라고 아파트 브랜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추억’(?)의 이름이지만, 1999년에 삼성 ‘사이버아파트’와 삼성중공업의 ‘쉐르빌’이 세간에 화제가 됐었다. 그리고 이보다 한참 전인 1993년에는 선경이 ‘홈엑스(HOMEX)’ 아파트를 분양브랜드로 삼기도 했었다.

아파트 브랜드 무한경쟁 시대를 연 계기는 1998년의 분양가 자율화였다. 분양가를 건설사가 정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품질과 가격의 아파트가 나왔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건설사 이름 이상의 ‘특별한’ 무엇이 필요했다. 그것이 브랜드였고, 실제 브랜드의 파워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삼성중공업의 ‘쉐르빌’은 2001년 한국능률협회의 브랜드 파워 평가 주택부문에서 이전까지 최고 아파트로 꼽히던 ‘현대아파트’를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결국 이런 브랜드 파워에 대한 반응으로 ‘e-편한세상’과 ‘래미안’이 발 빠르게 론칭되면서 본격적인 브랜드 경쟁시대가 개막된 셈이다.

본격적인 아파트 브랜드 경쟁시대 이전, 1950년대~1970년대까지의 초기 아파트 이름은 지역명이 붙는 게 대부분이었다. 1958년에 준공된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나 1962년 최초의 단지개념 아파트인 ‘마포아파트’, 1969년 ‘한남동 외인아파트’ 등처럼 지역명을 이용해서 아파트를 구분했다.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토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주거형식이 고밀화, 고층화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건설업체가 늘고 아파트가 단지화되면서 건설회사 이름을 붙인 아파트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현대건설이 1975년 현대아파트라는 브랜드를 처음 사용했고, 이후 각 건설사들이 지역명과 건설회사 이름을 함께 사용한 아파트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이 199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다가 대형 아파트 단지의 미분양 사태 속출과 다양화되는 소비자의 기호와 아파트 시장의 경쟁심화 등이 겹치면서 각 건설회사들이 자사 아파트의 이미지 강화와 인지도를 제고하기 위해 브랜드전략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과 같은 아파트 브랜드시대를 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파트 브랜드화는 민간부문뿐만 아니라 공기업으로까지 퍼져나갔다. 한국토지신탁이 지난 2003년 아파트 브랜드인 ‘코리아의 아름다운 집’을 의미하는 ‘코아루’를 출범시켰는데, 민간 대형건설사 브랜드가 없는 일부 지방 부동산시장에서는 코아루 브랜드가 주변지역 시세를 이끄는 랜드마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인천도시공사도 2004년부터 ‘웰카운티’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도입했고, 경기도시공사 역시 2005년부터 ‘자연&’이라는 브랜드를 도입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내부 공모를 통해 ‘천년나무’를 아파트 서브 브랜드로 선정하는 등 민간과 공공 모두 아파트 브랜드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금과 같은 브랜드 아파트 선호현상은 결국 ‘가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가 주택구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투자가치이다. 소비자들은 주택에 대해 주거 목적 자체보다는 투자적 가치재로서의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는 주택구입 결정에 있어 단지특성이나 주택특성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즉, 입지여건이 비슷할 경우 브랜드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통해서 얻게 된 품질에 대한 신뢰성과 고급성 등 더욱 질 좋은 주택에서 살고자 하는 소비자의 요구가 ‘브랜드 아파트 선호현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롯데건설의 ‘캐슬’은 고급아파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낙천대’는 상대적으로 ‘싼’ 이미지를 보였다. ‘고급’과 ‘보급’으로 아파트 브랜드를 차별화하려던 롯데건설의 야심은 소비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게 됐고, 결국 ‘낙천대’는 ‘캐슬’로 개명(?)하며 자신의 가치 상승을 이뤘다. ‘힐스테이트’ 이전 현대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였던 ‘홈타운’ 역시 저렴(?)한 이미지 탓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힐스테이트’로 개명하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현재 아파트 브랜드시대는 제2기에 접어들었다. ‘래미안 퍼스트지’, ‘캐슬 골드로즈’처럼 브랜드는 유지하되 단지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브랜드+브랜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브랜드화가 진행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브랜드’에 현혹돼 실제 가치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브랜드는 ‘신뢰’라는 기반 위에 형성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사례가 종종 벌어진다는 것은 잊지 말자. 브랜드는 나에게 맞는 아파트를 고르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본 칼럼은 대한제당 웹진 2015년 7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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