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하재광 국장 / 월간 알이매거진

여름이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7월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끌고 있는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완화를 비롯한 주택시장 정상화 등의 내용을 담은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이른 바 ‘초이노믹스’다.

‘초이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기 시작한 가운데 정부가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을 내놓았다. 이른바 ‘9.1대책’은 일부 부동산 전문가 사이에서는 사실상 나올 수 있는 것이 모두 나왔다는 점에서 “부동산 규제완화의 종결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9.1대책은 다양한 규제 완화책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 개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실효를 못 거두곤 하던 다른 대책과 달리, 국회를 거치지 않고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개정하면 시행할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사실 IMF 때보다 더 지독한 경제위기라는 말이 떠돌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경기 활성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했는데, 9.1대책이 총대를 멘 형국이다. 실제로 부동산대책은 그동안 내수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 중에 단연 중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등 OECD국가들이 30~40% 안팎인데 비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산의 70% 이상을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역대 정부들이 경기 활성화를 위한 최대 현안인 내수경기 회복을 위해 ‘부동산과 주택시장 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을 쓸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 또한 자신들의 자산에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대책에 일희일비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보내왔었다.

부동산시장이 회복되면 내수활성화에 도움이 돼 왔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부동산 부문의 규제완화는 자연스럽게 건설경기를 부양하여 건설산업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일용직 근로자 등의 취업 증가와 함께 각종 연관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대책’의 내용에 따라 비난을 받는 경우가 상당함에도 경기침체 때마다 역대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부동산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9.1대책이 지난 6∼7년간 지속되어 온 주택시장을 침체에서 구원해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아서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전․월세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세에 따라 주택 구매로 방향을 전환하고자 하는 대기수요자의 증가와 LTV, DTI 규제 완화에 따른 구매력 상승이 결국에는 부동산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적 관측과 함께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지 오래인데다가 인구증가 정체 및 고령화, 주택소유에 대한 가치관 변화 등을 고려하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비관적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비관적 견해에 한 팔 거들고 있는 것이 정책에 대한 낮은 신뢰이다. 지금까지 역대정부에서 실시한 부동산정책이라는 게 상승기 때는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고강도 규제를 양산했고, 하락기에는 시장 부양을 위한 규제완화를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이른바 몇 년을 주기로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됐다.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부동산 시장 정상화라는 이름 아래 각종 정책이 쏟아져 나왔었다. 매매시장 활성화와 전세시장 안정화, 저소득층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올해 초에는 지난해 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월세 세입자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했는데, 결국 임대인에 대한 과세문제로 불똥이 튀면서 시장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이처럼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냉탕과 온탕을 드나드는 미봉책에 그치면서 정책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책의 지향점이 지나치게 ‘가격’ 중심으로 쏠려있기 때문이다. 주택이 태부족이던 시절에는 ‘공급’에 치우친 나머지 무리한 개발로 각종 사회문제를 낳았다면, 90년대 이후에는 가격이 상승하면 ‘투기억제책’을, 가격이 떨어지는 경기 침체기에는 ‘활성화대책’을 내놓는 것이 되풀이됐다.

특히 문제는 가격 중심의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지표’가 됐던 것이 이른바 ‘강남권’ 아파트가격이다. 참여정부 시절의 각종 규제책들도 재건축을 중심으로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치솟자 서둘러 내놓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강남권의 집값을 잡는 것도 실패를 했고, 아울러 강북지역의 주거환경개선도 가로막았을 뿐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MB정부 때는 뉴타운을 대거 지정했지만 역시 참담한 실패만 거뒀을 뿐이다.

특정 지역의 주택가격이 과도하게 움직였다고 해서 바로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 십중팔구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체 국민들의 주거 수준을 제고하고, 사회적 약자들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장기적인 계획으로 움직여야 비로소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은 자명하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무시한 채 가격 중심의 정책만 양산하게 되면 오히려 시장의 안정성만 해칠 뿐이다.

어쨌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발표 한 달이 되어가는 현재까지는 9.1대책이 요지부동이던 부동산시장에 충격을 준 것만은 틀림없다. 텅텅 비었던 모델하우스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부동산중개업소에 문의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9.1대책이 경기 활성화와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기에는 침체의 기간이나 깊이가 너무 길고 깊었고, 그 사이에 주택시장의 환경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노파심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부동산 활황기를 예측해 섣부른 ‘투자’ 유혹에 넘어가지 말 것을 권유한다. 이제 주택은 더 이상 ‘투자상품’이 아니라 생활에 꼭 필요한 ‘거주용’이라는 개념이 폭넓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예전처럼 최고의 재테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 본 칼럼은 대한제당 웹진 2014년 10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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