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공공성 요구, 오히려 공익 저해할 수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태희 부연구위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태희 부연구위원

한국도시정비협회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7월 15일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정비사업 과제와 역할’ 세미나를 공동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효율적인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민간과 공공의 협업방안이 논의됐는데, 특히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정비사업 추진현황과 민간공공 협력과제’ 발제를 통해 공공정비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현행 정비사업의 문제점 및 주택공급활성화를 위해 공공과 민간이 나아갈 방향 등을 제시해 눈길을 모았다.

이태희 부연구위원은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를 거쳐 영국 셰필드(Sheffield) 대학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에서 도시재생 및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래 도시정비와 도시재생, 도시계획, 도시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정비사업 전문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태희 부연구위원을 만나 정비사업의 현황과 문제점,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어떤 곳인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1995년 3월 건설산업 전반을 체계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산업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여러 연구진들이 건설 정책·경영·금융·사업관리, 해외건설, 건설·부동산 경기전망, 도시개발·정비, 주택 등 여러 건설 분야에 걸쳐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론 도시재생 및 정비사업 분야의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 정비사업과 관련한 연구 등을 진행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제 우리나라 도시는 팽창의 시대를 지나 성숙도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환경파괴가 불가피한 신시가지 개발이 아닌, 기 개발된 기성시가지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도시정책의 페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비사업을 포함한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지난 세미나에서 공공참여 정비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공공참여 정비사업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 근거해 시행되는 공공재개발·재건축사업 외에도, 유사한 대상지에서 유사한 목적으로 시행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도심복합사업)과 주거재생혁신지구를 포함해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공공참여 정비사업의 수단이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역 환경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특히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나 공공 재개발사업은 상당한 도시·건축 인센티브가 제공되기에, 토지주 입장에서는 추가부담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여러 개선이 필요한 점도 존재하는데, 먼저 사업 수단간 특성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여러 사업수단들이 불필요하게 많이 생겼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사업 수단간 차이점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구역과 사업수단 선정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많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에는 여러 유무형의 규제를 통해 민간 정비사업이 추진되기 힘들도록 해 사실상 공공참여 방식으로 유도했으며, 초기 도심복합사업의 경우 사업지 선정 과정에 토지주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해 많은 비판과 저항을 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도시계획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현재 정비사업은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기반해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고 있는데, 도심복합사업이나 주거재생혁신지구는 사실상 내용과 목적이 유사함에도 정비기본계획에 기반하지 않고 추진되고 있어 기본계획 수립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 정비사업 진행과정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실상 대동소이한 여러 공공참여 사업수단의 경우 필요한 것만 남기고, 사업 수단별로 그 특성을 명확하게 하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혼란을 줄일 필요가 있다. 또한, 사업 수단별로 필요한 인센티브를 합리적 수준으로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적정한 수준의 공공기여를 유도해야 한다.

이외에도 최근 도입된 공공참여 정비사업은 공공주택특별법과 도시재생법 등 도시정비법 외에도 다양한 법률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를 도시정비법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비기본계획에 바탕을 두고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 주택공급활성화 등을 위해 공공과 민간이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원론적으로 실용주의 철학에 기반하고, 선택할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용주의는 도덕적 원칙이나 동기의 선함보다 문제해결 능력과 결과에 집중하는 정치철학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공공 정비사업이 공공성이 높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업방식이고, 민간정비사업은 수익성만 추구하고 다양한 부작용만 양산하는 올바르지 못한 사업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갖고 바라봤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민간 정비사업도 지자체의 역량에 따라 충분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공공성’만 지나치게 요구할 경우, 아예 사업추진이 무산되거나 지연돼 결과적으로 주택공급이 축소되고 주거환경 개선이 되지 않아 ‘공익’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우리는 이를 공공 재건축사업과 관련한 논란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분법적 시각을 버리고, 누가 시행하든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정책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공공사업 방식으로 몰아가지 말고 토지주들에게 다양한 장·단점을 가진 사업 수단을 제시한 후 그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확대해 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인센티브와 공공기여를 연계해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으면 더 많은 공공기여를 해야 하도록 여러 선택지를 제시한 후 주민들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여건이 갖춰진다면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공공은 사업이 투명하고 비리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감시자 및 지원자 역할을 할 필요가 있으며, 주거환경 개선은 필요하지만 사업성이 부족해 민간방식으로 사업추진이 힘든 지역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정비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 정비사업의 역할 및 의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있다면.

정비사업은 기반시설이 부족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된 지역을 개량해 도시기능을 회복하거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으로, 대게 전면철거형 방식으로 시행된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정부가 도시계획에 기반해 충분한 기반시설이 갖춰진 주거 및 상업용지를 조성할 여력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급속한 도시화 과정을 겪었다. 그 결과,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현시점에서 볼 때 시민들의 눈높이를 만족하지 못하는 주거지역, 효율적인 토지 활용을 하지 못하는 중심지가 산재해 있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정비사업은 이러한 지역에서 토지주가 주도해 공공재원 투입 거의 없이 일반분양 수익과 토지주의 추가분담금으로 사업비를 조달해 추진된다. 또, 지난 정부에서 다양한 공공참여 정비사업 수단이 새롭게 도입돼 LH 등 공공기관이 토지주와 협의를 통해 추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비사업은 토지주와 지자체, 더 나아가 시민 전반의 복리 향상에 기여한다. 토지주들은 토지의 잠재 가치를 실현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며, 공공 입장에서도 공공재원 투입 거의 없이 인허가 행위만으로 기반시설과 생활SOC 등 공공시설, 임대주택 등을 무상 또는 시세 대비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확보하고, 각종 세수와 부담금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일반시민들 입장에서도 기반시설이 갖춰진 도심에 양질의 주택이 공급되기에 이익이며, 일정 조건을 만족해야 하긴 하지만 재개발사업의 세입자에게도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이사비 등이 지원된다.

비록 일각에서 정비사업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고, 이러한 비판이 일정 부분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도시의 주거환경 개선 기반시설 등 공공시설 확보, 양질의 일반분양 주택과 임대주택 확보 등 정비사업의 공이 과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도 정비사업을 포함, 넓은 의미의 도시재생에 초점을 두고 계속 연구를 해 나갈 계획이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이해 및 권리관계, 사업성, 관련 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동기만 선한 정책이 아닌, 현실에서 작동 가능해 시민 전반의 삶의 질과 도시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정책이 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 각 구역 토지등소유자 및 조합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정비사업은 민간과 공공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와 권리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진행된다. 특히,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의 협조 없이는 사업추진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사업비 규모가 매우 커 여러 이권을 두고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도 하다.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서는 조합 내부의 적극적인 소통, 최선이 힘들면 차선을 택하는 유연한 태도 그리고 특히, 조합장 및 임원들의 철저한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이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여러 현장연구를 수행하면서 조합장 및 임원들의 리더십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크게 갈리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가능한 한 조합원들은 훌륭한 조합 임원들을 선출해야 할 것이며, 선출된 임원분들은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조합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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