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이재현 수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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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관계

채무자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소재 재건축조합이고, 채권자 A는 채무자의 조합장, 채권자 B, C, D는 채무자의 이사였던 사람들이다.

채무자 조합의 조합원들은 지난 6월 4일 조합원 1/10 발의로 임시총회를 개최해 채권자들을 조합장 및 이사직에서 해임하고 채권자들의 직무집행을 정지하는 안건을 전자적인 방법을 통해 결의했다.

그 후 채무자 조합은 감사를 직무대행자로 해 7월 16일 조합장 및 이사 선임 등을 안건으로 임시총회를 개최한다고 공고했다. 채권자들은 위 해임결의의 효력정지 및 7월 16일 총회의 개최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했고, 법원은 7월 14일 인용했으나 그 후 조합의 항고로 해임총회 효력정지결정은 취소된 바 있다. 이에 채무자는 7월 15일 감사 명의로 “총회 개최일을 7월 30일로 변경한다”고 공고했다.

채권자들은 이 사건 총회가 발의서 및 서면결의서 재사용, 소집 권한 없는 사람에 의한 소집, 위법한 전자적 방법의 의결권 행사 허용 등 하자가 있으므로 그 총회에서 이뤄지는 결의는 무효가 될 것이 명백한 바, 총회결의무효확인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해 이 사건 총회의 소집금지를 구했다.

 

∥ 법원의 판단

가. 발의서와 서면결의서 재사용

채무자는 선행총회의 발의서와 서면결의서를 연기된 이 사건 총회에서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고 있으나 ▲선행총회와 이 사건 총회는 개최일이 변경된 외에 목적사항 등 나머지 부분이 전부 동일한 점 ▲선행총회 발의서에 ‘총회개최금지 또는 절차적 사유로 무효가 될 때에는 절차적 사유를 보완해 다시 개최하는 총회에서 이 총회소집요구서를 재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재돼 있는 점 ▲조합원은 이미 제출한 발의서나 서면결의서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철회할 수 있으므로 재사용으로 인해 조합원 의사가 왜곡될 염려도 없는 점에 비춰 발의서나 서면결의서를 재사용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나. 감사의 소집

채무자 정관은 ‘조합원 1/5 이상이 총회 목적사항을 제시해 조합장에게 총회소집을 청구했으나 조합장이 그 청구를 받고도 2월 이내에 정당한 이유 없이 총회를 소집하지 않은 때 감사가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 총회는 조합원 1/5 이상이 조합장 아닌 감사에 대해 소집청구를 한 다음 감사가 바로 소집하고 개최일을 변경하는 등 정관 규정에 따라 소집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소집 당시 조합장 및 이사 전원에 대한 해임결의가 이뤄져서 달리 조합장의 직무를 대행할 사람이 없었고 ▲해임결의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 결정도 취소된 이상 해임결의에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감사가 총회를 소집한 것이 위법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다. 전자적 방법에 의한 의결권 행사의 효력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은 ‘조합원은 서면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 등 상황에서 지상의 인정을 받으면 전자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제45조 제5항, 제8항). 여기서 서면에 전자적 방법이 포함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려우나 한편으로 도시정비법 제40조 제1항 제10호에 따라 정관에서 전자적 방법을 총회 의결방법으로 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도 아니므로, 도시정비법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면 서면 외의 방법에 의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

휴대전화로 본인 인증이 이뤄지고 금융업무가 이뤄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본인 확인이라는 측면에서도 서면이 전자적 방법보다 더 우월한 의결권 행사방법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우므로 채무자가 정관에 전자적 방법을 의결권 행사방법으로 정한 것은 적법하다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총회에서 이뤄질 결의에 무효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피보전권리가 소명되지 않는다.

이에 더해 이 사건 가처분신청이 인용될 경우 사업일정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해 조합원들이 현저한 손해를 입게 되므로 채무자측 손해는 채권자들이 임원지위를 회복할 방법을 상실해 입는 손해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보전의 필요성도 인정하기 어렵다.

 

∥ 결론

법원은 이 사건 총회가 ‘소집 권한이 없는 자가 개최한 총회’임을 인정하면서도 조합장 및 이사들이 모두 해임돼 달리 직무를 대행할 사람이 없으니 위법하지 않다는 논리를 전개해 소집 권한 없는 자의 총회를 사실상 인정해준 것이다.

이는 법원이 일관되게 ‘소집 권한 없는 자가 개최한 총회’에 대해서 그 효력을 무효로 결정한 판례들과 명백히 배치된다.

또한 전자적 방법에 관한 의결권행사에 관한 판단 역시 그간의 법원 결정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부산고등법원은 “개정된 도시정비법 제45조 제8항은 재난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전자적 결의방법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봐야 하는 것이지, 위 조항을 근거로 현행 도시정비법이 전자적 결의방법에 의한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고, 오히려 현행 도시정비법에서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전자적 결의방법에 의한 의결권 행사를 예외적으로나마 허용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신설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2021라5130 결정)”고 판시해 정관에 근거가 없는 전자적 의결방법이 도시정비법상 허용되지 않는 의결방법임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채무자 조합이 준공을 앞두고 있고 10월경 입주를 예정하고 있어 현실적인 이유를 고려해 위와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법원이 결론을 정해 놓고 거꾸로 논리를 맞춘 것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다. 극히 이례적인 결정이므로 이를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례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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