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세대 간 내력벽 일부 철거 허용”

재건축 연한 완화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공동주택 리모델링 시장에 다시 한 번 호재가 찾아왔다. 내력벽을 일부 철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장관=강호인)는 지난해 12월 28일 “공동주택 리모델링 시 수직증축 가능 안전등급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세대 간 내력벽 일부 철거 기준을 오는 3월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유자들이 합리적인 평면(2bay→3bay)을 계획할 수 있도록 한 조치로, 안전등급은 기존 건축물의 증축가능 최소 내력비의 하한치로서 내력비 1.0이하에서 전문가 논의를 통해 판정기준(예: 내력비≥0.85)이 마련될 예정이다.

그동안 성남 한솔5‧매화1‧느티4단지, 안양 목련2‧3단지, 서울 대치2단지 등 수직증축형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들은 “평면계획이 용이하도록 세대 간 내력벽 철거 허용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에 국토부에서는 리모델링 시 거주자가 더 다양한 평면계획이 가능하도록 구조안전성 측면에서 세대 간 내력벽 철거 적정 범위에 대한 ‘공동주택 증축형 리모델링의 합리적 평면계획 기준 마련 연구(한국건설기술연구원)’를 시행했다.

또한 국토부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위 연구결과를 토대로 민간 전문가, 관련 협회‧조합 등의 의견수렴을 실시했으며, 지난해 12월 17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주관으로 우리은행 서울연수원에서 개최된 ‘수직증축 리모델링 시 세대 간 내력벽 철거 범위 관련 간담회’에서는 한국리모델링협회, 리모델링조합연합회,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학계, 수직증축 리모델링 국가정책연구 연구단 등이 참석해 ▲수직증축 가능 안전등급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세대 간 내력벽 일부 철거 허용 ▲수직증축 가능 안전등급의 판정은 현재의 건축구조기준을 적용하며,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합리적인 판정기준 마련 등에 의견을 모았다.

국토부 주택정비과 관계자는 “연구결과와 간담회 내용을 반영해 오는 3월말까지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 세대 간 내력벽 일부 철거를 허용하고, 이에 맞춰 증축형 리모델링 안전진단기준(고시) 및 매뉴얼을 개정해 수직증축 가능 안전등급 판정기준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난의 연속이었던 공동주택 리모델링

공동주택 리모델링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여 전인 2000년대 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지어진 공동주택들이 노후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녹색성장’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공동주택 리모델링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리모델링 관련 법규들도 2000년대 초 등장한다. 2001년 9월 15일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사용승인을 얻은 후 20년 이상 경과되어 리모델링이 필요한 건축물인 경우 건폐율ㆍ높이제한 등의 건축 기준을 완화해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으며, 2003년 11월 30일 시행된 주택법에 리모델링 주택조합의 설립근거와 매도청구권, 행위허가 등의 용어가 규정됐다.

특히, 공동주택 리모델링사업이 세간의 이목을 이끌었던 이유는 정부의 재건축 규제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안전진단 강화나 재건축 연한 연장 등 많은 규제들로 인해 재건축사업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서 각 건설사들이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재건축사업이 어려워진 단지들이나 리모델링을 염두에 뒀던 단지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시공자를 선정해 본격적인 사업진행에 나섰다. 정부도 리모델링사업을 적극 독려하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리모델링사업 역시 순탄하지는 않았다. 혼재된 관련법들로 인해 사업 추진이 녹록치 않았고, 투자비용 대비 성과도 담보하기 어려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건설사들도 하나둘씩 리모델링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고, 정권 교체로 재건축 규제가 다소 완화되자 “조금 더 기다렸다가 재건축사업을 진행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리게 됐다.

그러던 중인 지난 2013년 말, 공동주택 리모델링 추진단지들에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주택법 등이 개정돼 ‘수직증축’이 현실화 됐다는 소식이다.

당시 개정된 주택법은 리모델링 시 세대수 증가를 기존 세대수의 10%에서 15%로 확대하고 최대 3개 층까지 수직증축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특별ㆍ광역시장 및 대도시 시장이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시ㆍ군ㆍ구에 리모델링 지원센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하위 법령인 주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은 수직 증축 리모델링과 관련해 신축당시 구조도면이 있는 경우에 한해 15층 이상은 최대 3개층, 14층 이하는 최대 2개층까지 수직증축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리모델링 일시집중 등의 우려가 적은 경우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수립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개정 주택법 공포일인 2013년 12월 24일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지침’을 제정ㆍ시행하고, 각 지자체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침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기도 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리모델링 대상 단지들이 꾸준히 요구해 오던 것으로, 무엇보다 일반분양분이 확보되는 만큼 사업성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도 잠시 뿐이었다.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은 지난 2014년 9월 나온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이하 9․1 대책)’에 재건축연한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직격탄을 맞게 됐다. 준공 후 20년 이상의 범위에서 조례에 위임돼 있었던 재건축 연한(서울시 최장 40년)이 최장 30년으로 완화되면서, 공동주택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던 주민들 사이에서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재건축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게 됐다.

상황이 이러하자 리모델링을 추진했던 조합들은 리모델링사업 설계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의견서에 재건축사업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함께 담는 방식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재취합하는 등 고난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리모델링 단지들, “사업 활성화 계기될 것”

사실, 범수도권 공동주택 리모델링연합회(이하 범수리연) 등 공동주택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그동안 국회와 정부 등에 베이증가형 리모델링의 타당성을 알리고, 관련 주택법시행령 개정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특히, 범수리연은 지난해 11월 23일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공동주택 리모델링 주택법시행령 개정에 대한 탄원서’를 통해 “지난 2014년말경 베이증가형 리모델링이 주택법령상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국토부의 법령 질의회신에 많은 조합들이 당황했지만 곧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은 국토부가 ‘문제가 됐던 공동주택의 행위허가 또는 신고의 기준이 올해 안으로 개정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최근 언론에서 국토부가 법령개정에 부정적이라는 견해가 보도되고 국토부에서도 ‘아직 용역중이다’, ‘결론 난 것은 없다’ 등 애매한 답변만 하고 있어 조합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이로 인해 최근 짧게는 3년, 길게는 7~8년 동안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진행한 모든 리모델링사업을 중단, 아니 사업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범수리연은 동 탄원서를 통해 정부에 ▲일관적인 정책 유지 ▲리모델링을 통한 공동주택의 안정성 확보 ▲현행법령의 모순해소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내력벽 철거 일부 허용 소식은 공동주택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들에게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범수리연 전학수(대치2단지 조합장) 공동대표는 “많은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수직증축과 함께 내력벽 일부 철거를 통해 보다 순조롭게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우리 단지의 경우 지난 2014년 리모델링 사업설명회 당시 많은 주민들이 기형적인 평면에 불만은 토로한 바 있는데, 이번 내력벽 일부 철거 허용을 통해 베이증가형 리모델링이 가능해져 합리적인 평면을 마련할 수 있게 된 만큼 주민들의 호응도 뜨겁다”고 말했다.

또한 전 공동대표는 “일부에서는 리모델링 시 내력벽을 철거하는 것을 두고 ‘안전상 불가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리모델링 시 내력벽 철거가 아닌 내력벽의 조정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며 “이제 내력벽 조정을 어느 선까지 허용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남았는데 각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적게는 내력벽의 10%, 많게는 30%선에서 내력벽의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 연기

한편, 서울시의 경우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이 또 한 번 연기된 것으로 알려져 서울시 내 리모델링 추진단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본계획이 마련되지 않으면 도시계획심의는 물론 사업계획을 승인받는 것도 불가능한 만큼 해당 단계에 있는 단지 등의 경우 사업지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수직증축 리모델링 허용 등을 담은 개정 주택법 시행에 맞춰 지난해 5월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수립해 고시할 예정이었지만, 재건축 연한 단축 등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일이 지난해 5월로 예정됨에 따라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진행중이었던 용역작업을 지난해까지 마무리 한 뒤 올해 초 결정․고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또 연기가 결정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리모델링업계에서는 “이미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리모델링 단지들을 지원하고 있는 성남시와 대비된다”며 “지원은커녕 가이드라인조차 없이 사업을 진행해야 하니 답답한 상황”이라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리모델링 시 내력벽 철거와 관련된 기준 등이 어떤 식으로 결론지어질지, 서울시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 연기가 서울시 리모델링사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본 기사는 한국도시정비협회지 '도시정비' 24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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